[아시아경제 이초희 기자]#2008년. 전국 각지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던 '땅부자' 롯데그룹은 여태껏 단 한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세일앤리스백 방식을 통해 2000억원 가량의 현금을 확보했다. 보험사를 인수해 자본시장통합법에 대비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온 때였다. 세일앤리스백 방식은 그 당시 이랜드가 까르푸 인수와 관련한 자금난을 피할 때 사용했던 전략이었다.
#2010년. 신동빈 당시 롯데그룹 부회장은 인수ㆍ합병(M&A)시장의 키워드로 통했다. 1월 바이더웨이 인수를 시작으로 그 해에만 10여건의 M&A를 일궈냈다. 롯데쇼핑의 상장과 백화점, 마트 6곳을 세일앤리스백 방식으로 매각해 조달한 6000여억원이 M&A의 밑거름이 됐다. 보수적인 롯데의 'DNA'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평가도 이때 나왔다.
롯데쇼핑이 국내 주요 백화점과 마트 점포 건물을 팔아 1조원 안팎의 현금을 확보키로 하면서 신동빈 회장의 속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 동안 세일앤리스백 방식을 통한 롯데의 현금 보유는 '큰 사업'을 위한 발판으로 인식돼 왔기 때문이다. 신 회장이 현금보유를 위해 선택한 세일앤리스백 방식은 매각과 동시에 20년 이상 장기 임차 계약을 맺는 방식이다. 부동산을 매각해 목돈을 확보하는 대신 점포 임대료를 내는 식으로 바꾼 셈이다.
롯데의 세일앤리스백 방식을 통한 자산매각은 지난 2008년과 2010년에 이어 이번이 3번째다. 롯데는 백화점과 마트를 팔아 각각 2200억원과 6400억원 가량의 자금을 확보해 금융업 진출과 공격적인 M&A를 주도한 바 있다.
이번 롯데의 현금 확보를 두고 조만간 큰 M&A나 신 사업 구상이 발표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롯데쇼핑 측도 신 사업을 위한 현금보유라는 것에는 입장을 같이 했다. 롯데 관계자는 "하이마트 등 M&A를 많이 하면서 부채비율이 많이 올라갔지만 타 기업에 비해서는 낮고 현금보유도 월등히 앞서고 있어 전혀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라며 "신규사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현금부자인 롯데의 부동산 매각과 관련, 신격호 총괄회장의 숙원사업인 잠실월드타워에 필요한 막대한 공사자금과 2010년부터 추진했던 공격적인 해외 시장 진출, 올 들어 두 차례 주식을 매입했던 롯데케미칼의 부진과 수십억대 평가손실 등과 맞물린 자금압박설도 제기됐다.
롯데는 2010년 이후 중국과 인도네시아ㆍ베트남 등 해외에 점포를 낸 데다 GS백화점ㆍ마트, 하이마트 등을 인수하면서 50%대였던 부채 비율이 최근 70% 수준으로 올라섰다. 국제 신용 평가사인 무디스는 지난해 10월 'A3'이었던 롯데쇼핑의 신용등급을 'Baa1'로 끌어내렸다.
이와 관련 롯데측은 부채 상환과 신사업을 위한 자산유동화 측면의 금융기법일 뿐이라며 자금압박설을 일축했다.
롯데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이 침체된데다 향후 전망도 부정적이기 때문에 무작정 보유하고 있기보다는 경기 불황으로 어려운 때이니 현금을 확보해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예전에는 부동산 시장이 좋았기 때문에 국내에서 조달이 가능했지만 현재는 국내보다 해외에 매각하는 것이 쉬울 것으로 판단해 외국기업과 접촉 중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롯데는 현재 골드만삭스, 노무라금융투자 등과 매각 작업을 시작한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이 경영을 맡은 2008년 직후부터 롯데의 부동산 전략은 변화가 시작됐다"라며 "부동산으로 돈 버는 시대는 끝났다는 신 회장의 말처럼 부동산 슬림화를 단계적으로 진행해 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다소 공격적으로 추진했던 M&A와 해외진출때문에 현금부자로 통하는 롯데의 재무상태에 부담이 됐을 것"이라면서도 "현금 확보를 통해 또 다른 사업이 조만간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초희 기자 cho77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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