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진희정 기자]자금유치를 위해 증권사끼리 치열한 경쟁을 펼치던 토지보상채권의 인기가 시들해졌다. 한 때 수조원대 토지보상채권을 유치하기 위해 이동식 영업점 등을 개설하며 투자자들을 모은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당초 투자자들의 채권을 인수해 현금화한 돈을 금융상품에 재유치함으로써 대규모 자금 확보가 가능해질 것이란 증권사의 기대와 달리 오히려 채권을 떠안아야 하는 부담감이 컸기 때문이다.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3조원대의 보상금이 풀린 파주 지역의 경우 현재 보상이 진행중이지만 남아있는 증권사 이동식 영업점은 단 한 곳도 없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해당 지구에 토지보상 상담센터를 개설하고 영업점 직원들과 세무사까지 동원해 절세 노하우 등을 안내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금융지주회사의 경우 은행과 증권사가 합동 작전을 펼칠 정도로 보상채권 유치에 관심이 많았지만 현재는 조용히 철거하거나 근교 영업점에서 해당 지역을 담당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토지보상채권이란 막대한 보상금이 부동산 시장에 재투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보상금 일부를 채권으로 주는 것을 말한다. 일정금액을 제외하고는 현금과 채권 가운데 수령방식을 선택할 수 있지만 LH의 자금사정때문에 상당부분 채권으로 보상되고 있다.
보상채권은 대부분 5년만기 채권이다. 문제는 5년 만기시 현금으로 교환할 경우 분리과세 적용이 되지 않아 토지 소유주 입장에선 당장 현금화 하려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예를 들어 1억원짜리 토지를 5년 만기 토지보상채권(표면 채권금리 2.68%)으로 가지고 있을 경우 복리 등이 적용돼 5년 뒤엔 1억1400만원으로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보유한 채권규모가 클 경우 만기 상환시 이자소득세가 만만치 않아 종합소득과세 대상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채권 보상을 기피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증권사 입장에서는 당장의 마진보다 채권매도를 통해 현금화한 돈이 어디로 흘러갈지에 관심이 쏠려 있었다. 주가지수 하락으로 금융투자상품 수요가 줄었고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높아져 은행 예금에 몰릴 가능성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업계는 10년 만기 장기채권으로 분리과세를 받을 수 있게 갈아타거나 월이자지급식, 주가연계증권(ELS) 등의 상품으로 투자자를 유도했었다. 하지만 채권을 현금화하려고만 할 뿐 제2금융 상품으로 연계가 되지 않으면서 증권업계도 점차 채권에 대한 매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업계 관계자는 "서로들 경쟁적으로 채권유치에 나섰지만 이동식 영업점 개설이나 보유한 채권을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을 따지자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며 "특히 국내 금리는 저금리지만 미국 등에서 금리 인상움직임이 나타나면서 채권 보유가 부담스럽기 때문에 파주 처럼 대규모 보상금이 풀리지 않는 한 과거처럼 증권사가 몰려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토지 소유자들도 증권사를 토해 채권을 매도하고 현금화하는 방법 대신 은행을 통해 10% 할인된 가격에 채권을 처리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상반기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만 풀리는 토지보상금은 이월된 파주지구와 각종 산단 2조5000억원과 김해 율하 등 3곳에서의 5000억원을 합해 약 3조원이다. 이중 1조원 가량이 토지보상채권으로 풀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진희정 기자 hj_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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