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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5월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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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5월과 죽음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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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용장 막시무스가 아니라 한 노인의 비감한 표정이었다. 늙은 황제의 수심에 젖은 눈은 개선에 환호하는 대신 전장에서 죽어간 이들, 아군이든 적군이든 가련한 운명을 맞은 이들에 대한 만가(輓歌)를 올리는 듯했다.


불쌍한 피조물들에 대한 연민, 그들에 닥치는 무자비한 운명에 대한 두려움,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내게는 갑옷 아닌 갑옷처럼 그에게 더없는 위엄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보였다. 그 위엄은 황제의 권력이 아닌 그 연민과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에겐 이긴 이든 패배한 이든, 산 자든 죽은 자든 모두 냉혹한 운명의 사슬에 함께 묶여 있는 한 형제였다. 삶의 근원적인 비극성에 대한 그의 초연함, 그것이야말로 그를 현인으로 드높였다.

그의 지혜의 결정은 죽음에 대한 그의 담담함, "다만 자연의 한 과정이며 번영과 순환을 위한 자연의 목적에 이바지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에 담겨 있었다.


죽음.

죽음이란 그러나 우리에게 얼마나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것인가. 특히 만물이 생동하는 5월, 이 5월은 죽음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시간이다. 온갖 수목들이 온 정열을 다해 꽃을 피어내는 이 시간은 생명의 절정이며 죽음의 극복이다. 인생에 청춘이 있듯 1년 중 청춘은 5월일 것이며,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삶이 항상 5월이기를 바라는지 모른다. 5월에의 맹렬한 추구, 그건 바로 생명에 대한 극단적인 추구며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다. 우린 늘 살아 있으려 하고, 이를 매 순간 확인하려 한다. 잠시의 죽음도 용납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우리에겐 늘 자극이 필요하며 쾌락이 필요하며, 흥분 상태를, 탐닉할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 예컨대 오늘도 우리가 별미를 자랑하는 맛집 앞에 줄을 서며, 허겁지겁 먹는 건 그걸로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려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는 항상 '청춘'을 유지해주는 마약을 먹으며 강장제를 찾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늘 배가 고프며 갈망한다. 이 만성허기증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공통의 질환이다. 그러나 이 허기는 어떤 진수성찬과 탐닉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아무리 먹고 마셔도 굶주린다. 우린 풍요하나 빈곤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에너지로는 모자라 사람들은 타인에게서 이를 가져오려 한다. 타인의 에너지를 착취하려 한다. 서푼어치 권력만 있으면 다른 이에 군림하려 하고, 지배하려 하며, 억압하려 하며, 주인이 되려고 한다. 또한 우리 사회는 이 같은 극단적인 집착과 맹목적 추구를 장려한다.


그러나 이는 지배하려 하는 상대가 아닌 그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를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지금 펼쳐지고 있는 이른바 '갑을'이라고 하는 우리 사회의 우울한 진상, 또 공직자로는 물론이고 인간으로서 실격인 한 인간의 추한 행태는 이 서푼짜리 권력의 치기와 방종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비난함과 함께 무엇이 이들을 그렇게 비천하게 만드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우리 자신 속에 그와 같은 비천함이 없는지, 비루함이 없는지 함께 돌아봐야 한다.


물러서고 절제할 때, 자신을 낮추고 숙일 때, 그럴 때 오히려 우리는 높아지고 나아지며 채워지는 것이다. 비울 때 충실해지는 것이니, 죽음을 생각할 때 오히려 우리의 생은 치열해지는 것이다. 죽음을 알 때 삶을 알게 된다. 마르쿠스 황제가 얘기했듯 삶은 또한 죽음이며 사는 것은 동시에 죽는 것임을, 그것은 또한 5월의 꽃들의 화사한 자태에는 또한 죽음이 있음을, 신록을 준비하는 죽음이 있기에 생명의 절정이 있는 것이다.


봄날은 또 이렇게 속절없이 가는데, 그것이 이 봄에 꽃들에서 배우는 교훈이어야 할 것이다. 저 영험한 꽃들이 '미물'이 돼 가는 우리 초라한 인간들에게 베푸는 지혜인 것이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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