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김병현(넥센)이 달라졌다. 지난해 가장 큰 숙제였던 제구 불안을 해결했다. 효율적인 투구 관리로 이닝이터의 면모까지 발휘하고 있다.
11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SK와 홈경기는 찬사를 받기 충분했다. 선발투수로 나서 데뷔 이후 가장 많은 8이닝을 던졌다. 내준 점수도 2점에 불과했다. 시즌 3승(1패)은 덤.
일시적인 선전은 아니다. 최근 선발 등판한 3경기에서 모두 7이닝 이상을 소화했다. 내용도 훌륭했다. 지난달 19일 NC전에서 김병현은 7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투구 수는 92개밖에 되지 않았다. 지난 4일 KIA전에선 4실점했지만 7이닝을 책임지며 불펜에 휴식을 제공했다. 투구 수는 114개였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성과는 볼넷 수다. NC전에선 3개, KIA전에서 2개였다. 이날은 1개였다. 지난 시즌 14개나 허용한 몸에 맞는 볼도 5개밖에 내주지 않았다. 이 역시 적은 개수는 아니다. 하지만 김병현은 이미 38.2이닝으로 지난해 소화한 총 이닝(62)의 1/2 이상을 던졌다. 결점을 절반가량 씻어냈다고 할 수 있다.
제구 불안을 말끔하게 씻어낸 비결은 뭘까. 김병현은 말한다.
“지난 시즌 투구에선 중심 이동이 불안했다. 축이 되는 오른 다리가 적잖게 흔들렸고 왼발을 앞으로 딛을 때 몸이 앞으로 자주 쏠렸다. 올 시즌은 다르다. (부단히 연습한 덕에) 중심이동이 원활하게 이뤄진다. 공에도 하체의 힘이 효과적으로 실리고.”
밸런스는 많은 투구에도 흔들림이 없다. 이날 배터리로 호흡을 맞춘 허도환은 관련 질문에 주저하지 않았다.
“볼의 힘이 떨어졌단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8회에도 직구 구속이 138~141km정도 나왔다. 볼 끝도 훌륭했고. 타자를 요리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부단한 연습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결과다. 김병현은 지난 시즌 직후부터 체련을 단련했다. 사실 당시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10월 2일 목동 두산전에서 당한 김민호 전 두산 주루코치와 충돌로 오른 어깨 통증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구슬땀을 쏟은 건 온전하게 시즌을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그의 측근은 “김병현이 다른 부분도 그렇지만 체력적인 면에서 스스로 부족함이 많다고 느꼈다”라고 귀띔했었다.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예정된 일정보다 일찍 미국 애리조나 주 서프라이즈 스프링캠프로 향했다. 당초 선발대는 손승락, 문성현, 이보근 등 8명으로 꾸려졌었다. 이른 가세는 김병현의 강한 의지 표명으로 이뤄졌다. 염경엽 감독을 찾아가 면담을 갖고 결국 승낙을 받아냈다. 김병현은 말한다.
“지난해는 준비가 부족했다. 무엇보다 2011년 (일본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많은 공을 던지지 못해 공백이 너무 길었다. 올 시즌은 다르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그렇게 얻은 결과는 밸런스 회복만이 아니다. 완급조절에도 눈을 떴다. 김병현은 메이저리그 시절 빠른 직구와 다양한 움직임의 변화구를 앞세워 타자를 요리했다. 한국에서 맞은 두 번째 시즌은 조금 다르다. 직구 하나에서도 강약을 조절한다. 김병현 스스로 지난해와 가장 큰 차이라 밝히는 부분이다.
“이강철 수석코치로부터 ‘느림의 미학’을 배웠다. (직구를) 빠르게만 던지려고 하면 안 되겠더라. 서서히 속도를 올리거나 중간에 변화를 줘 상대가 타이밍을 잡지 못하게끔 하고 있다.”
제구를 동반한 포심 패스트볼은 거침이 없다. 우선 유리하게 카운트를 가져간다. 특히 오른손타자와 맞대결에서 바깥쪽은 물론 몸 쪽 공략으로 재미를 본다. 그 빈도는 자연스레 늘었는데 결정구로도 적잖게 사용된다. 김병현은 몸 쪽 코스에 싱커와 투심 패스트볼도 구사한다. 타자들은 공략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빛을 발휘하는 건 왼손타자와 승부에서도 다르지 않다. 바깥쪽으로 던지는 포심 패스트볼이 향상된 제구 덕에 제법 유리한 카운트로 연결된다. 자연스레 넓어진 결정구 선택에서 김병현은 서클체인지업을 자주 꺼내든다. 시속 20km가량 느린 가라앉는 공으로 이날도 한동민, 조동화, 박재상 등을 범타로 돌려세웠다. 싱커로 적잖은 땅볼도 유도했다.
익명을 요구한 베테랑 타자는 말한다.
“정말 무서워졌더라. 특히 제구가 그랬다. 기교파와 대결에서 카운트를 밀리면 타자는 이겨낼 방도가 없다. 최근 김병현이 그렇다. 공격적인 투구에서 어떤 공을 던질지 예측하기 어렵다. 공 끝 움직임이 좋아서인지 맞아도 파울이나 범타가 된다. 짜증나는 투수가 한 명 늘어난 것 같다.”
1년 사이 달라진 김병현의 리그 내 위상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