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한반도 안보위기 명분으로 농축·재처리 불허할 가능성
[아시아경제 오종탁 기자]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하겠다고 선언하면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미국이 한반도 안보 위기를 명분으로 우리나라에 핵연료 농축과 재처리 권한을 부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3일 "북한의 핵시설 재가동이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에 직격탄을 날리지는 않을 것이라 본다"면서도 "북한이 (비핵화를 위해) 그동안 해왔던 합의들을 파기하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2일(현지시간)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의 합동기자회견에서 "북한은 도발적이고 위험하며 사려없는 발언들을 삼가야 한다"며 "미국은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케리 장관은 이어 '한미원자력협정과 관련해 한국은 핵연료 농축과 재처리를 허용해 줄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미국의 입장은 어떻느냐'는 질문에 "이번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서 이 문제를 논의했고 내가 곧 서울을 방문해서 후속 협의를 할 것"이라며 "적절한 형태로 지속할 수 있고 지속될 관계라고 자신한다"며 다소 모호한 입장을 나타냈다.
내년 3월 19일 만료되는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하는 것은 우리 정부가 추진해야 할 가장 시급한 한미 간 현안으로 꼽힌다. 윤병세 장관은 현재 미국에 머물며 미 정부 관계자들과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정부는 이달 중순 케리 장관의 방한, 내달 초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서도 어떻게든 우리의 입장을 전할 방침이다.
현재 미국 내에는 원자력협정 개정에 대한 반대 여론이 우세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워싱턴 정가는 핵 비확산 체제 유지에 주력하는 모습"이라며 "미국 의회에서 새 원자력협정을 위한 협상 과정에서 골드스탠더드(황금기준)를 밀어붙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골드스탠더드는 해당국에 핵연료 농축·재처리 권한을 포기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는 모든 원자력 협정이 골드스탠더드 조항을 포함해야 한다는 법안을 2011년 만장일치로 발의하기도 했다.
물리적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다. 미 의회의 비준절차와 일정을 감안하면 실제 협상 기간은 6개월 안팎이 될 예정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원자력협정 개정 시한을 1∼2년 정도 한시적으로 연장하는 방안까지 제기된다. 하지만 외교가에서는 이마저도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어 우리나라는 당장 협정 공백 사태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오종탁 기자 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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