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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3장 화실이 있는 풍경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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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3장 화실이 있는 풍경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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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 증오의 끝은 어디일까? 인류에게 과연 희망이란 말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그러자 하림은 배문자가 우정 맡겨준 만화대본 생각이 났다. <전쟁이 종의 진화에 미치는 영향>이라 했던가. 제목 하나는 거창했다. 전쟁이 종의 진화에 미치는 영향이라니.... 하림은 자기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게 그의 일이었다. 줄거리를 잡아 대충 대본을 써주면 나머지는 어차피 꽁지머리가 제멋대로 이리저리 뜯어고쳐서 만화로 그릴 것이었고, 그의 이름으로 나갈 것이었다.

그리고보면 한때 인류는 진화에 대한 꿈에 젖어 산 적이 있었다. 다윈의 자연 진화론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었고, 헤겔과 꽁트, 마르크스를 거치면서 자연 진화론은 마침내 사회 진화론으로, 역사발전 단계론으로 전개되었다.


‘역사는 발전한다!’
이보다 더 가슴 설레게 하는 슬로건이 어디 있겠는가. 20세기초 세계의 젊은이들은 이 빛나는 슬로건을 가슴에 지닌 채 불 타는 열정으로 어두운 역사의 뒤안길을 건너 기꺼이 자신의 목숨까지 바쳤던 것이다. 원시 공산사회에서 노예제로, 노예제에서 봉건제로,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사회주의에서 인간의 가장 완전한 사회형태인 공산주의로...!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라! 만국의 노동자의 단결하라! 우리가 얻는 것은 자유요, 잃을 것은 쇠사슬 뿐이다!
그에 따라 지구의 반은 행진을 했다. 레닌과 마오와 체게바라, 카스트로가....

어디 그들뿐인가. 자본주의는 자본주의대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보이지 않는 손의 조화! 인간 욕망의 가장 자유로운 형태인 시장경제! 복지 지상왕국! 을 외치며 행진을 했다. 케인즈, 루즈벨트, 처질, 디즈니랜드와 마를린 몬로..... 그들 역시 장밋빛 미래에 대한 꿈에 젖어 나아갔다.


파시스트 히틀러조차 국가사회주의의 강력한 미래를 제시하였고, 나찌가 폴란드로 침공하기 전 열린 뉴른베르그 집회는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 꿈의 축전이었다.
“전쟁과 혁명, 십구세기 말부터 이십세기 초까지 지구는 이렇게 용광로처럼 뒤끓고 있었지. 어느 진영에 서있든, 모든 젊은이들은 곧 다가올 미래에 대한 벅찬 꿈에 젖어 있었어. 누가 옳았든 아니든 그건 어쩌면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몰라. 어쨌든 누구의 꿈이든 고상하고 아름다웠던 것은 사실일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그들은 그 꿈을 쫒아 행진을 했어.”
언젠가 80년대 학번인 동희 형이 말했다.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며, 인간 사회는 끊임없이 진화한다는 그들의 믿음은, 그러나 불행히도 인간의 내부 깊숙이 잠들어있던 어둠의 힘, 사악한 짐승의 힘을 과소 평가하고 있었어. 자연 진화론으로 볼 때도 아직 채 진화되지 않은 탐욕스런, 검은 원숭이가 각자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거야.”


그는 우울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행진이 멈추고나자 검은 원숭이가 다시 서서히 고개를 들고 나타나기 시작했지. 냉전세대. 그리고 썩어빠진 사회주의 관료들과 자본주의 은행가들이 다시 세상을 장악했어. 미래에 대한 고상한 꿈은 사라지고 대신 누추하고 더러운 전쟁, 지금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아무런 희망도, 이념도, 혁명도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 로마제국 보다 더 큰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이란 거대한 제국과 맞서 가난뱅이 나라 가난한 젊은이들은 마약을 먹거나, 자기 몸무게 보다 더 무거운 총을 지고 걸어가거나, 절망에 젖은 채 자신의 몸에 폭탄을 감고 자살테러를 하지. 인류 역사에 이보다 더 절망적인 세기가 언제 어디 또 있었을까?”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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