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베트남 전쟁 악연, 금융으로 끊는다"
[다낭(베트남)=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길쭉한 베트남 땅의 중간 쯤에 위치한 다낭은 베트남의 다른 어떤 도시보다 잘 정돈돼 있다. 북쪽에는 후에, 남쪽에는 호이안이라는 유명 관광지를 끼고 있어 여행의 관문이라 불리기도 한다. 시가 지원하는 1순위가 '관광'사업이다. 그러나 전쟁을 겪은 아픈 역사는 다낭의 또 다른 얼굴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이곳에는 대량의 고엽제가 살포됐다. 베트남 중부지역에서만 연간 2000여명의 암환자가 발생하고 있는 것도 고엽제와 무관치 않다. 다낭은 한국 청룡부대의 주둔지였다.
현 시점에서 한국과 베트남간의 전쟁이라는 악연을 끊는 매개는 특이하게도 '금융'이다. 수출입은행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원조가 그것이다. 다낭병원 핵의학ㆍ방사선센터는 그 현장이다. 한국의 첨단 의료기술과 EDCF의 원조자금이 만나 암 초기 진단률과 생존률을 높인다는 게 양국 관계자의 전언이다.
EDCF는 개도국에 대한 수은의 유상원조를 말한다. 한국국제협력단이 무상원조의 주무기관이라면, 유상원조는 수출입은행에서 이 EDCF를 통해 시행한다. 무상원조와는 달리 수원국이 원리금 상환의무를 가지고 있다. 다만 상환기간이 대부분 30년 이상으로 길고, 금리도 연 1% 미만으로 낮게 책정돼 있는 등 차관조건이 유리하다.
베트남은 단일국가 규모로 EDCF 최대 원조국가다. EDCF의 전체 승인액(약 9조600억원) 가운데 20.6%(1조8655억원)가 베트남에 지원된다. 건수를 기준으로도 43건에 달한다. 필리핀(6744억원, 7.4%), 방글라데시(6513억원, 7.2%), 인도네시아(5374억원, 5.9%) 등 다른 동남아 국가와 비교해도 눈에 띄는 실적이다.
다낭병원의 핵의학ㆍ방사능센터는 지난 2011년 총 118억원의 지원을 승인받았고, 2월 말 현재 51억여원이 실제 집행됐다. 주요 의료기자재 중 하나인 사이클로트론은 한국원자력의학원이 2002년 최초로 국내기술을 이용해 개발에 성공한 암진단 시약 제조 기기다. 이번 베트남 지원을 통해서 첫 수출실적을 기록했다.
EDCF를 통해 한국과 베트남 경제가 '윈윈(WIN-WIN)' 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DCF로 현지의 인프라 개발 사업을 원조할 경우, 공급업체선정을 위한 입찰에는 한국기업들만 참여할 수 있다. 대기업 뿐 아니라 중소기업에도 문이 열려있다. 다낭병원의 암진단 시약 제조기기 역시 생산업체인 삼영유니텍이 참여해 구매(수의)계약을 체결했다.
수은은 특히 앞으로 EDCF사업에 대한 중소기업의 참여를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서동욱 수은 경협기획실 팀장은 "대ㆍ중소기업간 컨소시엄을 유도하거나 중기 적합 업종을 발굴하는 등 기술력이 우수한 우리 기업들이 EDCF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지에서 EDCF사업을 총괄하는 김영석 하노이사무소장은 "EDCF는 현지의 사회ㆍ경제적 발전과 국내 기업의 해외진출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면서 "기술력과 성실성을 보장받은 기업들이 건설, 교통, 의학,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지 정부 관계자들은 EDCF확대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베트남 기획투자부의 호앙 비엣 캉 국장은 "중국, 일본 등의 개발원조와 비교해 한국의 EDCF는 차관 조건이 유리할 뿐 아니라, 신청 과정이나 심사가 간단하다"면서 "또한 대금 처리 역시 원활해 국내 인프라 설립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정 기자 alph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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