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때는 바야흐로 미국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1850년대 말이다. 노예제 폐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링컨이 활발하게 정치적인 노선을 펼치기 직전인 이때 노예제의 최전방에 '장고'가 있었다. 물론 '장고'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만든 허구의 인물이지만, 제도의 모순과 악랄함을 온 몸으로 보여주면서도 스스로의 재능과 주변의 도움으로 제도를 뛰어넘는 선구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통쾌한 복수극인 '장고: 분노의 추적자(이하 '장고')'는 미국식 서부극에 스파게티 웨스턴이 뒤섞인 영화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전작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를 배경으로 나치에게 복수하는 '개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더니, 이번에는 노예제도에 반기를 드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다. '복수'는 영원한 그의 테마이지만, 정작 쿠엔틴 타란티노는 이 영화를 '영웅의 모험담'으로 정의한다.
영화의 첫 장면은 쇠사슬을 차고 헐벗은 채 어딘가로 팔려가는 노예들의 모습에서 출발한다. 이들 무리 앞에 나타난 현상금 사냥꾼 닥터 슐츠(크리스토퍼 왈츠)는 노예 무리 중 '장고'에게 현상범을 잡도록 도와주면 그를 자유의 몸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제안한다. 뛰어난 총 솜씨를 가지고 있던 장고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둘은 현상범 사냥으로 짭짤한 수입을 올린다.
이 과정에서 장고는 자신의 아내가 미시시피주의 한 노예 농장에 팔려갔음을 알게 된다. 농장의 주인은 잔인하기로 악명이 높은 '캔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다. 그의 취미는 흑인 노예들을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결투시키는 '만딩고' 게임이다. 닥터 슐츠와 장고는 위험을 무릅쓰고 캔디의 농장으로 향한다.
무려 165분이라는 긴 시간동안 펼쳐지는 이 장고의 모험담은 쿠엔틴 타란티노답게 끝없이 펼쳐지는 살육의 향연이다. 살점이 떨어져나가고, 사지가 찢겨나가는 총격전은 참혹했던 그 시대상과도 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여전히 눈을 질끈 감게 하는 잔인한 장면이 몇 차례 등장하지만, 오히려 감독의 광팬들은 전작들보다 그가 얌전해졌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닥터 슐츠의 도움으로 자유를 얻은 '장고'는 '장고 프리맨'으로 거듭난다. 백인들과 더불어 당당히 말을 타고 행진하며, 누더기 옷을 벗어던지고 '파란' 색깔의 옷을 골라 입기도 한다. 장고의 그 '원색' 스타일은 꽤 많은 웃음을 유발하는데, 원래 이 장면은 닥터 슐츠가 장고에게 옷을 골라 주는 장면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장고 역의 제이미 폭스가 '자유를 얻은 장고가 자신의 옷을 직접 골라야 한다'고 주장해 장고가 스스로 고르는 설정으로 바뀌게 됐다. 이 밖의 유머 코드도 상당히 있다. 특히 백인 우월주의 집단인 KKK단을 희화화한 장면이 압권이다.
제이미 폭스는 '분노의 추적자'가 된 장고를 충실하게 표현했지만, 많은 이들이 영화를 보고 나면 닥터 슐츠 역의 크리스토퍼 왈츠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이 역으로 제82회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거머쥔 크리스토퍼 왈츠는 교양있고 수다스러운 독일인 역을 매력적으로 그려낸다. 이 역의 최대 장점은 인종에 대한 편견이 없다는 것이다. 생애 첫 악역을 맡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흑인이면서도 흑인을 배신한 사무엘 L. 잭슨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장고'는 미국의 추악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어코 끄집어내 비틀고, 뒤집고, 꼬집어 놓는다. 노예들에 가해지는 무자비한 폭력이 가슴아픈 만큼 마지막 복수극은 통쾌하고 개운하다. 카메오로 잠깐 등장하는 쿠엔틴 타란티노와 1966년 '장고'의 주연을 맡았던 프랑코 네로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다. 음악선곡 잘하기로 유명한 쿠엔틴 타란티노는 이번에도 기대를 충족시키는 재능을 보인다.
조민서 기자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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