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관리와 물가안정 분리 목소리 높지만 의회 개혁법안 승인 5년째 미뤄
[아시아경제 박희준 기자]인도 중앙은행이 딜레마에 봉착했다. 물가안정을 목표로 삼고 있지만 정부의 채권을 공개시장조작을 통해 사들이면서 물가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인도 중앙은행인 인도준비은행(RBI)은 그동안 인도 중앙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조장한다며 적자재정을 강하게 비판해왔지만 정부 발행 국채의 27%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RBI의 국채보유량은 2008년 25억 달러어치에서 지난해 910억 달러로 불어나 전체 발행규모의 27%에 이르렀다. 이는 RBI가 물가안정 권한 위에 정부 차입을 달성하게 하는 책무를 동시에 갖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문제는 올해 인도 정부가 내년 3월 말로 끝나는 2014 회계연도에도 6조 루피(미화 약 1108억 달러)의 국채를 발행할 계획이어서 RBI의 국채보유규모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RBI는 국채를 직접 매입하지 않고 공개시장 조작을 통해 간접으로 사들이고 있으며 이는 금융시스템내 유동성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공개시장 조작의 결과물일 뿐이라고 강변한다.
그렇더라도 정부가 채권을 발행해 돈을 푸는데 일조하면서 국채수익률을 높이고 물가상승에 기여함으로써 물가안정 능력을 스스로 해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홍콩에 본사를 둔 투자은행 CLSA아시아태평양마켓츠의 라지브 말리크 이코노미스트는 “대규모 재정적자에 자금을 공급함으로써 RBI는 인플레이션 싸움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인도 정부는 복지지출과 유가보조금 지급 등을 위해 국채발행으로 조달한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는 등 적자재정을 펴 2008년 국내총생산(GDP)의 2.5%인 재정적자 규모가 이달 말로 끝나는 2013 회계연도에는 5.2%로 5년 사이에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인도 재무부는 지난달 28일 유권자의 표심을 얻기 위해 2014년까지 빈곤층 지출을 확대하기로 했다. 인도 재무부는 2014년 3월 말로 끝나는 회계연도 재정적자 규모를 4.8%로 낮추기 위해 세수증대,자산매각,보조금삭감을 할 계획이다.
또 2017년에는 재정적자 규모를 GDP의 3%로 낮추고 성장률은 지난 10년 평균인 8% 수준으로 돌려놓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은 인도 정부의 생각과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우선 재정적자 확대로 돈이 풀린 결과 물가상승 압력이 매우 높다. 물가지표인 도매물가는 지난해 연간 7.5%를 기록해 RBI가 적정수준으로 판단하는 약 5%를 크게 웃돌았는데 내년 3월 말로 끝나는 2014회계연도에 재정지출 규모를 올해보다 16% 증가한 16조7000억 루피(미화 3070억 달러)로 늘린다면 물가는 더 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반면 경제성장률은 생각과 달리 급락하고 있다. 2013 회계연도 성장률은 10년 사이 가장 낮은 5%로 예상되고 있다. 전년 6.2%에 비해 성장속도가 크게 느려지는 셈이다.
이에 따라 국채관리와 물가안정을 중앙은행에서 분리하고 독립기관을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이를 위해 개혁법안이 2007년 의회에 제출됐지만 여소야대 형국인 의회는 아직까지 이를 승인하지 않고 있다.
박희준 기자 jack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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