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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2장 혜경이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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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2장 혜경이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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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은 혜경의 말을 들으며, 혜경이 사는 연립주택 벽에 걸려있던 흑백사진을 떠올렸다. 웬만한 창문 하나 크기는 될 만한 판넬 속엔 미친 듯 전자기타를 치고 있던 그의 모습이 들어있었다. 그건 아직도 여전히 그녀 속에 그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너한텐 미안하지만, 하여간 그때, 내겐, 그 사람이 얼마나 신선하게 보였는지 몰라. 문예반에서 만난 친구들이랑은 달랐어. 뭐랄까? 마치 딴 세상을 본 기분이었어.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처럼 말이야.”
하림의 품에 안긴 채, 혜경은 꿈이라도 꾸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세상에는 결코 정복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추억이다. 혜경의 추억은 하림이 결코 정복할 수도, 감히 갈 수도 없는 곳이었다. 그곳엔 여전히 살아있고, 살아있을 그녀의 추억, 전자기타를 매고, 투타타타타거리는 폭발음을 내는 오토바이를 탄 사나이, 양태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하림 자신은 그들의 추억 변두리에서 어슬렁거리는 낯선 존재에 불과했다.

질투라기보다는 차라리 슬픔 같은 게 들었다. 그럼, 그녀는 그에게 단지 원사이드러브였을 뿐이었을까. 가을빛 내리는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그녀를 만난 것이 과연 행이었는지, 아니었는지도 잘 알 수가 없었다.
사실 양태수와 장하림은 처음부터 다른 별에서 온 것처럼 달랐는지 모른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인간이 있다. 하나는 하림이 자기처럼 세상이 그어놓은 금 밖으로 나가면 죽는 줄 알고, 질서를 목숨처럼 따라야 비로소 안심하는 인간들, 즉 범생이라 불리는 인간이고, 다른 하나는 금 자체를 거북하게 여기고 틈만 나면 어쨌거나 금 밖으로 나가려는 인간, 즉 양태수 같은 또라이가 그것이다. 그런 두 종류의 인간은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심지어는 예비군 훈련장에서도 쉽게 구별이 된다. 범생이들은 또라이들을 멸시하고, 심지어는 그들에게 이유 없는 분노까지 품게 마련이다. 범생이들은 또라이들이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나아가 질서를 파괴하는 놈들이라고 욕을 한다. 세상을 지배하는 자는 언제나 범생이들이다. 애국에 불타는 범생이들을 또라이들에게 비애국자의 딱지를 붙이고, 심하면 감옥이나 정신병원으로 보낸다. 범생이들의 신은 태양신 아폴론이다.


그러나 세상엔 아폴론 숭배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질서파괴자요, 술과 춤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또라이 역시 존재한다. 그들은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창조적 혼란에 열광한다. 그들은 소속되길 거부하는 영혼을 지녔다. 기존의 권력과 가치가 튜닝하고자 하는 모든 힘에 저항한다. 예술가, 혁명가가 그런 자들이다. 그리고 히피, 건달, 날라리, 떠돌이, 허풍선이, 사이비, 얼치기, 미치광이, 삐딱이, 아웃사이드라 불리는 사람들도 그런 부류의 자들일 것이다.


혜경의 피 속에도 양태수랑 닮은 그런 또라이의 요소가 흐르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그녀가 양태수의 이야기를 할 때에 원망보다는 그리움이 더 많이 묻어있는 것이리라.
하림은 문득, 혜경에게 자기란 낯선 존재, 잠시 새가 앉았다 가는 나뭇가지 같은 존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슬퍼졌다.
“하림아, 미안해. 그 사람 이야기를 너무 해서....”
“........”
“그래도 하고나니까 마음은 좀 가벼운 진 것 같애. 늘 뭔가 감추고 있는 기분이었거든.”
“너, 정말 그 사람 사랑했구나.”
“응.”
“.......”
“그 사람 죽고, 오토바이 채 한강에서 건져 올렸어. 그 사람답게 죽은 거지, 뭐.”
혜경은 폭 한숨을 쉬더니 돌아누우며 말했다. 하림은 혼자 생각에 젖은 채 어둑한 천장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벽 너머 누군가 골목길을 바삐 걸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김영현 기자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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