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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내정자 비리 의혹, 방탄 나선 정부..개선 '시급'

시계아이콘읽는 시간01분 59초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새 정부의 조각 작업이 한창인 요즘 정부 부처 대변인실에서는 장관 내정자에 제기된 의혹에 대한 '해명자료'를 내놓느라 부산하다. 그러나 아직 정식으로 임명돼 취임하기 전인 내정자에 대해, 그것도 개인적인 비리 의혹에 대해 정부 부처에서 변호ㆍ방어 역할을 하는 것이 과연 법적인 근거가 있으며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정부 부처가 장관 내정자들의 비리 의혹 해명 창구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정부 부처가 비리 의혹이 제기된 내정자의 '변호ㆍ방탄막' 역할을 하는 데 근거로 삼고 있는 것은 일단 지난 2010년 9월 신설된 인사청문회법 15조 2항 "국가기관은 공직후보자에게 인사청문에 필요한 최소한의 행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그러나 부처들의 실제 행태는 '최소한의' '행정적' 지원을 넘어서는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국무총리실은 정홍원 총리 내정자와 관련, 11일 아들 병역 의혹, 13일 재산증식 의혹, 18일엔 또다시 아들 병역 및 재산 증식 의혹을 해명하고 나섰다. 행정안전부의 경우 15일 유정복 내정자 친형, 인천공항 68억원 배관공사 불법 수의계약 건에 대한 해명자료를 내놨으며, 미래창조과학부는 18일 김종훈 내정자의 국적 논란과 관련,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15일 유진룡 내정자의 농지법 위반 의혹이 제기되자 즉각 해명에 나섰으며 같은 날 법무부는 황교안 장관 내정자의 종교편향 논란을 해명한 데 이어 16일 연말정산 부당 기본공제, 아들 불법 증여, 18일 위장전입의혹과 관련한 반박 자료를 연일 쏟아냈다.

최근 사퇴한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내정자의 경우 헌재가 각종 의혹에 육탄방어에 나섰다. 헌재는 지난 1월14일 이 내정자의 위장전입 및 저작권법 위반 의혹, 15일 삼성으로부터의 협찬, 16일 룸살롱 출입, 17일 자녀 재산 증식, 18일 조폭 석방 개입 의혹, 장남 군 휴가 및 건강보험 차녀 피부양자 등록 의혹 등 하루가 멀다 하고 해명 자료를 내놓았다.


모두 헌재의 본연의 기능과 관련된 '행정적 지원'이라고 볼 수 없는 내정자 개인의 비리 의혹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게다가 해명은 대부분 "사실무근, 혹은 오해에서 비롯된 사항"이라고 주장하는 등 객관적이거나 검증된 자료 없이 일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정부 부처들의 이 같은 행태는 인사청문회법 상의 규정에 어긋난 탈법ㆍ부당한 것이지만 정부 부처들은 별다른 문제로 생각하고 있지 않는 분위기다. 한 정부 부처의 대변인실 관계자는 "장관 내정자가 요청하는데 거부하기가 어렵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를 보였다.


헌법기관이나 정부기관들이 이처럼 내정자의 개인 비리에 대한 변호를 자임하고 나서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권위를 훼손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헌재의 경우 소장 내정자에 대한 무리한 변호에 나서는 바람에 국민들로부터 "사법의 최후 보루가 맞느냐"는 빈축을 샀다.


장관 내정 부처는 아니지만 최고의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8일 원장 출신인 현오석 경제부총리 내정자의 증여세 탈루 의혹을 해명하고 나서 객관적어야 할 연구기관으로서의 권위에 스스로 먹칠을 했다는 지적을 샀다.


정부 부처 등 해당 공공기관의 둔감한 인식도 문제지만 이 같은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모호한 법적 규정을 바로잡아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인사청문회법 상 내정자에 대한 지원 범위 및 대상, 내용이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태훈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장(연세대 교수)은 "정부부처가 갈수록 인사청문회 대상자의 해명 창구로 전락, 변호인 노릇을 하고 있는데다 의혹에 대한 증거 조사, 증언 등을 확보하지도 않은 채 후보자 의견을 일방적으로 내놓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며 "조속히 법을 개정, 지원 내용, 범위를 정해 정책 검증 및 관련 사항 외에 국가기관이 동원되지 않도록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사청문회 전통이 깊은 미국의 경우 정부 부처가 인준 준비 시 정책 자료를 제공하고는 있으나 개인 비리 의혹을 해명하는 일은 없다. 우리나라도 이런 외국의 사례를 참조해 국가 기관의 고위 공직 지명자에 대해서는 해당 부처가 정책 검증 등의 업무에 한정, 지원할 수 있도록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규성 기자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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