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교육과학기술부가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해 내린 수정명령을 두고 저작자들이 반발해 소송을 낸 가운데 대법원이 교과부의 절차상 하자부터 살펴야 한다고 판단했다. 사실상 교과서 수정 파동에 대한 교과부의 책임을 묻는 결과가 나와 교사단체들이 반겼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5일 김모씨 등 금성출판사의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공동저작자 3명이 교과부를 상대로 낸 수정명령취소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수정명령의 대상이나 범위에 명백한 표현상의 잘못이나 기술적 사항 또는 객관적 오류 등을 바로 잡는 것을 넘어서서 이미 검정을 거친 내용을 실질적으로 변경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지 따져 교과부가 교과용도서심의회의 심의에 준하는 절차를 거쳤는지 여부를 심리해 절차상 하자 여부를 판단해야 했음에도 원심은 이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앞서 2004년 국회 교육인적자원부 국정감사 과정에서 일부 국회의원이 근·현대사 교과서의 좌파 편향 문제를 지적해 논란이 되자 통일부, 국방부 등은 2008년 교과부에 수정요구사항을 제출했다.
이에 교과부는 같은 해 7월 253개 항목의 수정요구안을 취합해 국사편찬위원회에 검토를 요청한 뒤 편찬위의 한국사교과서심의소위원회가 내어 놓은 교과서 서울방향에 대한 일반적 지침을 제시받았다. 심의소위는 다만 개별 항목에 대한 적부 판단은 하지 않았다.
교과부는 이어 같은 해 10월 시·도 교육청의 추천을 받아 ‘역사교과전문가협의회’를 구성해 개별 항목에 대한 수정요구안 검토를 의뢰하고 3주 가량 검토작업을 수행했다. 협의회는 논의내용을 회의록으로 남기지 않았다.
이후 그해 12월 교과부가 해당 협의회가 내놓은 55개 항목에 대한 수정권고안을 바탕으로 검정교과서들에 대한 수정을 권고하자 공동저작자 3명은 일부 수용불가 사항을 구분해 교과부에 의견을 냈다. 그러나 재차 교과부가 수정지시를 내리자 저작자들은 자신들의 동의 없이 교과서 내용을 수정하지 말라고 통지했으나 출판사는 임의로 교과서를 수정했다. 이에 김씨 등 공동저작자들은 교과부를 상대로 ‘수정명령을 취소하라’며 2009년 소송을 냈다.
앞서 1심은 “교과서 수정에 관한 교과부 처분은 그 실질이 새로이 실시된 검정에 따른 처분이므로 교과용도서심의회의 심의를 거치지 않고 임의로 변경할 수 있게 하면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확보 취지를 잠탈할 우려가 있다”며 “교과용도서심의회의 심의 없이 행해진 처분은 위법하다”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뒤이은 2심은 그러나 “교과부 처분은 그 수정명령의 필요성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 재량 범위 내에서 적절하게 이뤄진 것으로 판단된다”며 결과를 뒤집었다.
이날 대법원 판결과 관련 전국역사교사모임은 논평을 내 “교과서 수정 조치는 단순히 내용 몇 군데를 고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역사인식을 원하는 방향으로 고치려는데 목적이 있다”며 “이명박 정부의 행위가 부당하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라고 환영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역시 성명을 내 “정부가 교과서 내용을 통제하려는 행위가 부당함을 확인했다”며 “지난달 입법예고된 교과부 장관의 교과서 수정명령 권한 및 감수권을 명시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즉각 철회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교과부는 정확한 판결 취지를 파악해 조치를 취할 입장으로 알려졌다.
정준영 기자 foxf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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