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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박순원의 '서정적 구조' 중에서

시계아이콘00분 34초 소요

1. 과일은 윤곽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각자 익는다 익기 시작하면 익는 데 열중한다 뒤를 돌아보거나 앞을 내다보지 않는다 순간순간 열심히 익어갈 뿐이다 처음 익어보는 것이지만 흡사 늘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익는다(......)
2. 나는 떨어진 과일이다 떨어져서 엉덩이가 썩고 있는 과일이다 (......) 썩지 않은 부분으로 눈을 시퍼렇게 뜨고 얼마나 잘 사나 보자 노려보고 있는 중이다 윤곽과 윤곽을 채운 살들이 뭉개지고 있는 중이다


■ 과일 열매 하나도 자기의 생을 온몸으로 살아내야 한다. 잘 익은 과일은 잘 익은 대로, 재수없이 떨어진 과일은 억울하게 썩어가는 대로. 시간의 태엽 위에 펼쳐진 존재로서, 과일이나 인간이나 다를 게 없다. 성한 것을 뽐낼 일도 없고, 상한 것을 투덜댈 일도 없다. 내려오는 빛을 한껏 들이마셔 생의 맛과 빛깔과 살들을 채울 뿐이다. 다 익지도 못한 낙과라도, 뭉개진 채로 잘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과일은 절망하지도 않고 자살하지도 않는다. 저 자연의 낙천적인 활기야 말로, 우리가 도시락 싸고 찾아가 배워야할 향기로운 수업이다. 잡스가 만든 애플보다 과수원의 떨어진 사과가 더 멋진 스승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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