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창익 기자]작년 크리스마스 다음날, 경매 시장에 기구한 사연을 가진 매물이 나왔다. 서울 강남구 서초동 신반포1차 아파트 21동 175㎡(53평)다. 감정가는 20억원으로 경매는 1차에서 유찰됐다.
이 물건은 오는 29일 2차 경매가 진행된다. 경매 시작가는 16억원으로 떨어진 상태다. 경매 전문가들은 이 매물이 한두 차례 이상 더 유찰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 강남의 대형 아파트가 경매로 나온 이유는 이렇다. 이 아파트 주인은 은행과 개인에게 총 25억원 가량의 융자를 받았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우리은행에서 총 15억원의 담보대출을 받았고 개인에게도 아파트를 담보로 9억9000만원을 빌렸다. 제2금융권에서 담보대출로 빌린 2억원까지 합치면 총 27억원 가량이 이 아파트에 묶여 있다.
금융권과 개인으로부터 30억원 가까운 돈을 대출받을 수 있었던 아파트의 감정가가 20억원으로 떨어진 것은 부동산시장 침체와 함께 재건축에 얽힌 특수한 사연과 관계가 깊다.
신반포1차는 21개동 총 790가구 규모의 재건축 단지다. 공급면적 기준으로 93㎡(28평), 106㎡(32평), 109㎡(33평), 175㎡(53평) 등 네 가지 타입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가장 큰 175㎡60가구가 20ㆍ21동에 몰려있다.
2000년대 초 이 아파트 단지가 재건축을 추진하면서부터 1~19동과 20ㆍ21동간 갈등이 불거졌다. 재건축 후 무상으로 받을 수 있는 대지지분율이 서로 달라 대립각이 세워졌던 것이다.
20ㆍ21동 주민들은 대지지분율이 상대적으로 작았다. 하지만 대출을 집중적으로 받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은 강남 중대형 아파트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때였다. 이런 가격을 반영해 지분을 재평가하면서 30억원 가까운 담보대출이 가능해진 것이다.
하지만 입주민간 갈등은 해소되지 못한 채 결국 분리재건축하기로 결정됐다. 사실상 20ㆍ21동의 분리재건축은 블가능하게 된 셈이다. 작년 12월 서울시 건축심의에서도 통합재건축 권고를 하지 않기로 결정됐다.
이같은 소식은 20ㆍ21동 아파트 값 폭락을 불렀다. 실거래가 전혀 없어 매매가를 추정할 수 없지만 이 아파트의 현재 국민은행 시세는 18억~19억원 선이다. 인근 S중개업소 사장은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호가가 20억원 선이었는데 지금은 매매가 거의 불가능해 호가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1~19동 109㎡(33평)의 경우 최근 실거래가가 18억5000만원이다. 20평 차이가 나는데 가격은 오히려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특히 이 물건은 전세 세입자가 선순위 임차인으로 설정돼 있어 경매 낙찰가는 더 낮을 수도 있다.
20ㆍ21동의 한 주민은 "용적률 등을 감안하면 현재 시장상황에서 재건축은 불가능하다"며 "집을 새로 고칠 대안을 생각해봐야 하겠지만 주택시장이 급랭한 탓에 담보대출을 많이 받은 이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창익 기자 wind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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