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구 ○○동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집 담보로 얼마나 대출을 받을 수 있을까요."
지난해 말 한 시중은행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상담직원 A(여)씨가 남성고객으로부터 받은 문의전화다. 이후 통상적인 질문과 답변이 오가던 중 이 남성은 "듣고만 있어"라며 갑자기 돌변, 신음소리를 내고 입에 담기 어려운 성적 발언을 내뱉었다. 유사 성행위를 하고 있음을 알린 것이다.
몇 번의 경고 끝에 간신히 전화를 끊기는 했지만 A씨는 약 3분간 '공황 상태'에서 분노를 삼켜야만 했다.
또 다른 남성 고객은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우리 만나서 같이 잘래"라고 물었다. 상담원의 경고에 "싫으면 다른 애들한테 물어볼게"라며 전화를 끊은 이 고객은 다시 같은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3명의 다른 여성 상담원에게 똑같은 성희롱을 했다.
"넌 누구냐, 목소리가 맘에 든다"거나 "나랑 사귀자"고 하는 전화는 일상다반사가 됐다. 심지어는 "같이 자고 싶은데 (돈을) 얼마 주면 되겠냐"고 묻거나 성적 취향을 알고 싶다고 하는 사례도 있었다. "남자도 콜센터에서 근무하냐"는 조롱도 빈번했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20~30대 여성이 다수인 콜센터 상담원은 익명성을 노린 성희롱과 욕설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피해자'인 상담원들 대부분이 금융사 정직원이 아니라 용역업체에서 파견된 계약직 직원이라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고 넘어가는 사례가 많다는 점이다. 은행 또한 이미지 실추를 우려해 고객에게 적극 대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콜센터 직원들에 대한 성희롱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면서 금융권은 내달부터 콜센터 상담직원에게 상습적으로 성희롱을 일삼는 고객 앞으로 '형사 처벌이 가능하다'는 안내문을 발송하는 등 엄정하게 대처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이 같은 콜센터 직원을 상대로 한 악성민원이 심각한 상황에 처했다고 판단, 고발 등의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을 금융회사에 주문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금융회사가 콜센터 직원이 외주용역회사 소속이 대부분이라 악성민원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콜센터 직원의 인권침해를 방지할 수 있도록 상습적으로 언어폭력을 일삼는 고객은 적극적으로 고발하도록 유도하고 있으며 콜센터 직원에 대한 '고충처리반'을 신설하는 등 보호ㆍ감시체계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욕설 등 모욕뿐만 아니라 상담 업무와 무관한 사적인 말로 장시간 업무를 방해하는 사례도 심각한 수준"이라며 "피해 직원들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만 관리자에게 보고조차 안 하는 사례가 더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성희롱을 당한 상담원이 전화를 끊으면 고객이 다시 전화해 전화를 끊은 것에 불만을 제기하는 예도 있다"며 "이런 문제가 사회적으로 공론화해야 상담원들에 대한 제도적인 보호수단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강욱 기자 jomar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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