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대 스타트업 대표, 직급 낮춰…상대편 부담 덜어주는 영업전략
[아시아경제 박혜정 기자]#지난해 창업한 스타트업(신생기업) 대표 A씨의 명함에는 '대표'라는 직급이 없다. 대신 '실장'이라고 새겨 넣었다. 창업 2년차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탓에 내린 고육지책 중 하나다. 국내 대기업과 계약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계약 조건을 꼼꼼히 따져보고 보다 신중히 결정내리기 위해서다. A 대표는 "제시된 가격 조건이 이득이 되는지 손해를 보는지 자세히 봐야하는데 대표 자격으로 만나면 최종 결정까지 주어진 시간이 생각보다 별로 없다"면서 "'대표님과 상의한 후 연락하겠다'는 식으로 이야기 한 뒤 하나하나 따져보고 손해 보지 않는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명함에 '대표'라는 직급 대신 '실장', '팀장', '차장' 등을 새겨 넣는 스타트업 대표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이런 경향은 스타트업 대표 중에서도 20~30대 젊은 층에 집중된다. 사회 전반으로 청년창업 바람이 거세게 불었지만 오히려 명함에서 '대표'라는 글귀를 지운 20~30대 젊은 대표들이 많아진 것이다.
스타트업 대표들이 제시한 이유는 다양하다. 친환경 생활용품 제조업체 B 대표는 영업 전략 차원에서 대외적으로 차장이라고 새겨진 명함을 들고 다닌다. 30대 초반의 나이가 부담되기 때문이다. B 대표는 "대표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부분이 있더라. 대표라 하기엔 아직 나이가 어리다보니 영업활동을 할 때 시간을 버는 등 편할 것 같아 차장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육아용품 제조업체 C 대표는 명함에 실장이라고 표시해뒀다. C 대표는 실무 담당자를 위한 배려 차원이라고 이야기했다. C 대표는 "상담이나 계약 등 실무를 진행하는 담당자들이 주로 과장, 부장급인데 대표라고 하면 부담을 가질까봐 명함에 대표 대신 실장으로 새겨 넣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슷한 직급끼리 만나 실무 차원에서 사업 이야기를 하다보면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좋아진다"면서 "명함에 실장이라고 새기길 잘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아직 대표 자리가 어색해서 스스로 직급을 낮춰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LED 조명 관련 설치 업체 D 대표는 올해 사업자등록을 마친 '초짜기업'이다. D 대표는 "올해 사업을 시작해 별다른 성과가 없는 터라 대표로 나서기 부족한 면이 많다"며 "예전에 다니던 회사의 직급 그대로 실장이라고 새긴 명함을 들고 다니는 편이 마음 편하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사회 전반적으로 청년창업 붐이 일었지만 20~30대 대표들이 감내해야할 어려운 창업 환경과 사회적 편견이 여전히 남아있는 게 현실"이라며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청년창업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한 방안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혜정 기자 par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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