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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연맹이 이런 걸 왜 만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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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연맹이 이런 걸 왜 만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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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한국프로축구연맹은 K리그의 머리다. 당연히 축구와 관련된 활동만 펼친다. 최근 행보는 조금 달라지는 듯했다. 축구와 이렇다 할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유소년 체육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개발 당시 타 종목 관계자들은 "축구 연맹이 왜?"라고 반문했단다. 생색내기나 예산 낭비로 비난받아 마땅한 상황. 허나 속사정을 알고 나면 고개는 자연스레 끄덕여진다.

▲축구연맹이 만들었지만 축구가 없다?


연맹은 12일 서울 신문로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유소년 신체활동 프로그램인 '기지개'를 런칭했다. 4~13세 유소년의 신체-정신 건강을 위한 스포츠 리더십 프로그램. 연맹과 서울대학교가 함께 개발했고, 유소년 축구 발전에 적극 참여했던 스탠다드차타드금융그룹이 후원을 맡았다.

프로그램은 간단하면서도 체계적이다. 총 네 단계 레벨의 여섯 가지 키트로 구성됐는데, 개개인의 신체 발달 단계나 활동 목표에 따른 맞춤형 활동에 초점이 맞춰졌다. 신체는 물론이고 후프, 공, 줄, 콘, 막대 등 도구를 활용한 간단한 놀이 형태란 점도 눈길을 끈다.


예를 들어 '화장지를 지켜라'는 가슴 위에 놓인 화장지를 떨어뜨리지 않고 반환점을 돌아오는 게임이다. '막대 세우기'는 여러 명이 둥글게 선 채로 각자 막대나 훌라후프를 들고 있다가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바로 옆 사람 자리로 이동, 도구가 넘어지지 않게 잡는 놀이다. 간단한 놀이 같아도 전자는 심폐지구력, 유연성, 정신력 등을, 후자는 순발력을 길러준다.


노리는 효과는 체력 향상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룹 활동이기에 도전, 경쟁, 협동을 경험할 수 있다. 나아가 자신감, 또래 커뮤니케이션, 스포츠 리더십 등을 증진시켜 정신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게임이나 스마트폰에선 얻기 힘든 요소들이다.


"축구연맹이 이런 걸 왜 만들어요?"


잘 정돈된 유소년 체육 교육 프로그램은 사실상 일반 학생을 대상으로 한 일반 스포츠 교육용이다. 문화체육관광부나 교육과학기술부, 혹은 대한체육회에서나 만들 법하다. 축구와 관계된 내용도 거의 없다. 공으로 하는 놀이가 몇 가지 있지만 굳이 축구공이 아니어도 되는 활동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굳이 소매를 걷어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 "왜냐고? 축구가 제일 잘할 수 있으니까"


"처음 2년 전 이 프로그램을 제안했을 때 문화체육관광부도, 타 종목 연맹도, 심지어 연맹 내부적으로도 '이건 축구도 아닌데 왜?', '더 급한 게 많은데?'란 반응이 나왔다."


김기범 연맹 경영기획팀 과장의 말이다. 그는 "지난해 K리그 관중은 300만 남짓이었다"라고 운을 띄운 뒤 "관중은 언제라도 다시 줄어들 수 있고, 반대로 말하면 4000만 명은 축구에 관심이 없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때마침 내년은 K리그 30주년의 해. 김 과장은 "그들에게 어떻게 어필할 수 있을지 고민을 거듭했다"라고 털어놓으며 "스포츠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통해 K리그를 알게 하고, 또 K리그가 사회적 문제 해결에도 공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기지개'는 당장 관중을 늘리려는 직접적이고 표면적인 접근이 아닌 기본 틀서부터 사회 공헌을 시작하겠단 구상이라 할 수 있다. 축구로 한정하지 않고 스포츠에 대한 전체 파이를 키우는 게 우선이란 주장이다. 김 과장은 "영화 관객을 늘리려면 일단 사람들을 영화관에 끌고 오는 게 우선이지, 어떤 장르가 육성돼야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어 "요즘 어린 학생들은 게임이나 휴대폰에 가깝지, 운동을 잘 하지 않는다"라며 "그들이 스포츠의 재미를 찾도록 돕고, 장기적으로는 스포츠 저변을 넓혀야 한다. 그것이 이번 프로그램 개발의 주된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그는 "야구·농구·배구는 이런 아이디어를 실천할 여력이 없다"라며 "그렇다면 축구가 스포츠 저변 확대에 앞장서자는 의도였다"라고 말했다.


"축구연맹이 이런 걸 왜 만들어요?"


선택한 도구는 유소년 프로그램이었다. 축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였다. 현재 프로스포츠 가운데 엘리트가 아닌 유소년 육성에 관심을 기울이는 종목은 사실상 축구가 유일하다.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꾸준히 유소년 축구에 공을 들여왔다. 노하우 면에선 단연 독보적이다.


▲정부도 놀란 패러다임의 전환


'기지개'의 소재는 축구로 한정시키지 않았다. 생각보다 어려운 결단에 김 과장은 말했다.


"이따금 학교로 유소년 축구 교육을 나갈 때가 있는데, 일단 여학생들은 빠진다. 여기에 운동을 하지 않는 남학생들까지 뒤로 물러나면 40명 학급에 들어가 10명을 데리고 수업하는 꼴이 된다. 재작년부터 각 학교에서 토요 스포츠 강사 1000여 명이 투입되고 있는데, 강사만 있을 뿐 프로그램이 없어 체계적 교육이 어려운 실정이다. 그래서 패러다임을 바꿨다. 접근 방식을 축구에 제한하지 않고 스포츠가 사회에 공헌하는 방식을 찾다가 일반 유소년 체육 프로그램 개발을 선택했다. 다행히 정몽규 연맹 총재가 기획 의도에 동의해 개발이 진행됐다."


김 과장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우리 프로그램을 보고 감탄해마지 않았고, 일본 쪽에서조차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느냐'라며 놀랐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벌써부터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 '기지개'는 내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협업을 통해 일반 학교 체육 수업 시간 및 방과 후 교실에서 적극 활용 가능하도록 보급될 예정이다. 당장 10만 명 이상의 학생들이 '기지개'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스포츠 사회 공헌의 새로운 모델


정몽규 연맹 총재는 "한 나라의 미래를 보려면 그 나라의 어린이들을 봐야 한다"라며 말했다. 그는 "요즘 어린이들은 예전보다 체격은 커졌지만 체력은 떨어졌고, 맘껏 뛰놀 장소나 시간도 부족하다"라며 "이런 가운데 '기지개'는 육체와 정신의 고른 발달을 도와줄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K리그는 대한민국 유·청소년의 건강증진과 체력발달에 기여하기 위해 앞으로 더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 및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축구연맹이 이런 걸 왜 만들어요?"


리차드 힐 스탠다드차타드 회장 역시 "우리 회사가 단순히 광고나 A보드 뿐 아니라 이런 활동을 통해 K리그에 기여할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한다"라고 운을 띄었다. 이어 "나 역시 아들을 세 명 두고 있는 아버지로서 어린이 신체 및 정신 발달에 스포츠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기지개'에 대해 "간단하지만 과학적 토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전례가 없는 독특한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한 뒤 "전국적으로 많은 어린이들이 이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을 것이기에 자부심을 느낀다"라고 덧붙였다.


프로그램 개발을 주도한 오자왕 서울대 스포츠산업연구센터 책임연구원 박사는 "학생들의 비만, 체력 저하 문제, 왕따 등 학교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스포츠가 각광받고 있다"라며 "실제 0교시 체육활동을 한 학생들 사이에선 폭력이나 정서적 문제가 줄어들었다는 하버드 대학의 연구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지개'는 신체적 능력뿐 아니라 사회적 능력, 커뮤니케이션, 즐거움 모두에 관심을 뒀다"라며 "곧 4권의 교재와 DVD도 발간해 현장 체육 교육에서 활용될 것"이라 설명했다.


더불어 "이번 프로그램은 체육 관계 단체와 일반 기업이 함께하는 사회 공헌의 새로운 모델"이라며 "단순한 기부가 아닌, 재능 기부를 통해 사회를 좀 더 긍정적으로 발달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도대체 왜?'라는 의구심은 깨끗하게 씻겨 내려간다. 30주년을 맞아 겉만 요란하고 번지르르한 것이 아닌, 100년 대계를 준비하려는 K리그의 자세를 확인할 수 있었다. K리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부족한 인기, 승리 지상주의, 인프라 부족 등 해결할 문제가 산적해있다. '기지개'같은 장기적 안목을 갖춘 시도가 반가운 이유다. 동시에 이처럼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시도와 노력엔 더 많은 박수와 격려도 필요한 법이다.




전성호 기자 spree8@
정재훈 사진기자 roz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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