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 설치여부·위치 등 따라 연간 경제효과 20~30억원
보행권 VS 생존권 충돌 사례도 많아
[아시아경제 나석윤 기자] 횡단보도의 설치 및 변경 등을 둘러싼 이해당사자 간 충돌이 거세지고 있다. 횡단보도 설치여부와 위치에 따라 주변 상가의 득실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의 경우 횡단보도를 통한 유입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유치경쟁은 필사적이라고 할 만큼 치열하다.
통상적으로 횡단보도 한 개를 설치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2000~3000만원. 도로 폭이 넓은 경우 등은 1~2억원까지 들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이에 따른 경제효과는 연간 20~30억원에 달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서울 구로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따르면 같은 규모 점포도 횡단보도 근접성에 따라 임대료나 매매가에선 큰 차이가 나타난다. 구로디지털단지역 인근 상가의 경우 횡단보도에 가까운 상가는 보증금 1억5000만원에 월세 500만원 선으로 그렇지 않은 곳에 비해 보증금 5000만원, 월세 100만원 정도가 더 비싸다.
하지만 이득을 보는 측이 있으면 손해를 보는 측이 있게 마련이다.
횡단보도 설치는 보행자들, 특히 고령자, 영유아 등 교통약자들에겐 보행여건의 개선을 의미한다. 또 횡단보도 주변 상가들은 통행인구 증가로 매출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반면 지하상가 상인들에겐 매출 감소라는 타격을 뜻하기도 한다.
특히 서울시가 최근 ‘걷기 좋은 도시’ 조성을 위한 지상 보행여건 개선에 나서면서 지하상가 상인들은 횡단보도 설치에 ‘공포’를 느끼고 있을 정도다. 서울광장 주변 지하상가 역시 바로 위로 횡단보도가 들어서 보행량이 급감해 직격탄을 맞았다.
오경근 을지로 지하상가 상인회장은 “이 쪽 지하상가가 리모델링에 들어가던 3~4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횡단보도를 없애거나 옮겨달라는 민원을 시청 쪽에 제기했다”며 “돌아오는 건 공허한 메아리 뿐이었고 지금도 매출 30~40% 감소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 논란 끝에 횡단보도가 설치된 명동 밀리오레 앞과 하루 유동인구 50만의 영등포역 지하상가 상인들도 같은 이유로 매출이 줄었다고 하소연한다. 영등포의 경우는 상인들이 횡단보도 설치 저지를 위해 한 달 가량 천막농성을 벌이고 법적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25일 일단락 된 서울 청계6가 횡단보도 설치 건 역시 4년여 간 팽팽한 협상을 거쳐 겨우 타결됐다. 논란 초기 동대문 지하상가 상인들은 “지하도가 건널목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지상에 횡단보도를 설치할 이유가 없다”며 “매출이 줄어드는 건 피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현행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은 횡단보도 설치와 변경에 경찰청의 교통규제 심의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각 지자체는 주민민원 등을 수렴해 후보군을 선정하고 이에 대한 경찰청의 사전심의를 받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생존권 보장을 외치는 상인들의 반발로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실정이다.
현재 서울지역에 설치돼 있는 횡단보도는 2만6600여개. 서울시와 서울지방경찰청으로 접수되는 횡단보도 민원은 하루 평균 30~40건 정도다. 이 중 교통약자들의 민원이 60~70%,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른 건이 20~30%를 차지한다.
이에 대해 서울지방경찰청 교통관리과 관계자는 “횡단보도는 보행자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한 공공적 요소이지 경제효과와는 별개고 고려사항도 아니다”라며 “다만 상인들의 반발이 있다면 주민공청회 등을 거쳐 원활한 조정이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나석윤 기자 seokyun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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