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의 거짓말? 車연비의 굴욕
-실제 주행측정 新연비, 내년 전차종 적용
-최대 22% 낮지만…아직 舊기준과 혼용
-연말에 나오는 2013년형 소비자들 혼란
[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지난 2010년 H사의 세단을 구입한 이관선씨(33, 회사원)는 ℓ당 12km가 넘는 연비가 운전때는 8~9km에 불과해 불만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운전습관 탓을 해왔다. 하지만 2013년부터 일괄적용되는 신연비 기준에 따르면 구연비보다 최대 25%까지 차이가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주변지인들은 벌써부터 중고차 가격이 더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올해 1월부터 새롭게 출시된 신차에 한해 적용하기 시작한 복합 연비 제도가 내년 1월부터 전 차종에 적용될 예정이지만 구 공인연비는 물론 새 공인연비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다. 미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국산차 모델의 공인연비가 과장됐다는 발표가 나온 이후 소극적으로만 불만을 나타냈던 국내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집단행동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만큼 연비가 차량 구매에 중요한 요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구연비와 신연비를 혼용해 사용 중이다. 구연비는 실제 도로가 아닌 실험실에서 연비를 측정한 것이며 신연비는 도심ㆍ고속도로ㆍ고속 및 급가속ㆍ에어컨 가동ㆍ외부저온조건 등 5가지 상황에서 측정한 '복합연비'다. 신연비가 실제 연비와 가까운 측정방식이지만 아직 두 기준이 혼용되고 있어 꼼꼼히 살펴보지 않으면 실제 연비를 알지 못한 채 차량으로 구매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2012년 이전 신차 구입 소비자들의 경우 내년 1월에야 새로운 기준에 맞는 공인연비를 확인할 수 있어 구입시 연비(구연비) 와의 차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렇다면 현재 국내에서 양산돼 판매되고 있는 차량들의 구연비와 신연비의 차이는 얼마나 될까.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ㆍ기아차의 모닝, 레이, K3, 벨로스터, 제네시스, K9, 싼타페, 뉴 쏘렌토R, 카렌스 등 9개 차종 신연비는 구연비에 비해 10~21%까지 낮다. 기아차 모닝의 신연비는 구연비에 비해 최대 22% 낮았다. 모닝 카파 1.0 MPi 모델의 구연비는 19.0km/ℓ에 달했지만 신연비를 기준으로 15.2km/ℓ로 내려간다.
국산 최초의 박스형 경차 레이도 카파 1.0 MPi 모델은 구연비 기준으로 17.0km/ℓ를 기록했지만 신연비를 적용해 13.5km/ℓ로 20.5% 하향조정됐다. 특히 올해 출시한 카파 1.0 터보 모델의 경우 신연비는 구연비 대비 22.3% 낮은 1km/ℓ까지 낮아졌다. 터보모델임에도 불구하고 ℓ당 18km를 주행할 수 있다는 점이 최대 장점이었지만 신연비를 적용한 수입 중형차 모델 수준까지 연비가 하향조정된 셈이다. 지난 6월 다양한 연비개선 기술을 적용해 경제성을 높인 현대차 2013년형 제네시스는 구연비를 기준으로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지만 신연비기준으로 3300cc와 3800cc 모델 각각 9.6km/ℓ, 9.3km/ℓ을 기록해 구연비와의 괴리도가 10%에 육박했다.
이밖에 기아차 K3를 비롯해 현대차 벨로스터 등 대부분의 모델이 구연비 대비 작게는 1~2km/ℓ, 크게는 4km/ℓ이상 차이가 났다. 반면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인 뉴 쏘렌토R 2륜구동 모델은 구연비와 신연비 차이가 0.8km/ℓ에 불과했다. 현대ㆍ기아차 관계자는 "신연비에 도심주행의 비중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전반적인 연비효율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며 "현재 시중에서 팔리고 있는 연식변경 모델의 신연비를 올해 연말까지 새로 제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구연비와 신연비간 차이가 크자 일부 국내 브랜드의 경우 2013년형 모델을 내놓고도 여전히 연비수치를 구연비로만 표시해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GM은 지난 6월 2013년형 크루즈를 출시하고도 아직까지 신연비 기준 연비를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 9월부터 2013년형 SM3, SM5, SM7를 출시한 르노삼성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르노삼성은 이달들어 2013년형 SM5를 출시했으나 신 연비가 아닌 구연비 기준 14.1km/ℓ로 제원을 공개했다. 이어 출시한 2013년형 SM7는 연비에 대한 언급 없이 기존 구연비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연식변경 모델을 내놓으면서 반드시 신연비를 제시해야한다는 규정은 없다"면서도 "일부차종에 대해서는 구연비와 신연비를 제시하면서도 구연비만 제시하거나 아애 연비에 대한 언급이 없는 일부 브랜드의 모습은 되려 소비자들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철영 기자 cy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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