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명(明)과 암(暗). 가장 밝은 곳과 가장 어두운 곳은 공존한다. 더욱 밝은 빛을 내기 위해서는 그만큼 주변의 어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명동은 벌써 크리스마스 분위기 내기에 한창이다. 백화점 계 양대 산맥인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은 앞 다퉈 크리스마스 트리를 설치하고 램프 점등을 시작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롯데백화점 본점, 애비뉴엘, 영플라자로 이어지는 건물은 수만 개의 전구가 빛을 발한다. 물론 주변 가로수까지 합세.
신세계백화점 1층에 들어서면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공중에 떠 있는 2층 높이의 거대한 트리를 보고 있자면 그 화려함에 걸맞은 차림새를 해야 할 것만 같다. 백화점 곳곳엔 크리스마스를 실감하게 하는 장식들이 설치돼 있어 기분을 한층 더 들뜨게 한다.
11월 초부터 백화점들이 점등시기를 앞세우며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목숨을 거는 것은 고객 유치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침체된 소비를 타개하고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열어 보겠다는 속내다.
문제는 이처럼 형성되고 있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오롯이 그들만의 잔치라는 점이다. 백화점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있는 남대문 시장과 주변 로드숍의 분위기는 너무도 달랐다.
백화점 건물에 형형색색 전등이 켜질 무렵 남대문 시장 상인들은 전등 불을 껐다. 상인들은 오후 7시가 될 무렵 전구 하나로 빛을 밝히는 가게 문을 아무 말 없이 닫았다. 이들에게 크리스마스는 남의 일이었다. 명동의 밝은 분위기를 남대문 시장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상인들의 얼굴에는 침울한 기색이 역력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실종된 채 이곳 상인들은 경기 불황을 그대로 체감하고 있었다.
장 보드리야르는 '소비의 사회'에서 '음식물 섭취량에는 한계가 있지만 음식물을 둘러싼 문화체계는 무한하다'고 했다. 경기 불황으로 소비자들의 주머니가 닫힌 요즘 벌써부터 크리스마스라는 새로운 분위기를 앞세워 소비를 창출하려 하고 있다. 그들이 밝은 빛을 내면 낼수록 주변은 더 어두워질 수 있다는 것을 한번쯤은 재고해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현주 기자 ecolh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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