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높이 뛰어오르셔야 합니다.” 얼마 전 유재석이 SBS <일요일이 좋다>의 ‘런닝맨’에서 시민들에게 단체 줄넘기를 가르치며 한 말이다. 유재석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수많은 게임을 했고, 게임을 하다 보니 남에게 줄넘기 요령을 가르칠 정도가 됐다. MBC <무한도전>을 시작한 뒤에는 스포츠 댄스부터 조정까지 온갖 스포츠를 배웠고, 추격전에서 빠르고 오래 달리기 위해 운동을 하고 담배를 끊었다. 또한 <무한도전>과 ‘런닝맨’ 전에는 SBS < X맨 >에서 수많은 출연자들을 아우르며 함께 게임을 하는 진행자였고, KBS <서세원쇼>에서 토크 실력을 보여주면서 오랜 무명에서 벗어났다. 유재석이 활동한 20여 년 동안, 예능 프로그램의 유행은 토크, 버라이어티, 리얼 버라이어티로 변해왔고, 그는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키며 계속 성장했다. 하하는 이 대단한 형에게 “슈퍼맨이 돼가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슈퍼맨은 꼬맹이 동생에게 말했다. “형들 은퇴하면 너희들도 (활약할) 준비해야지.”
<무한도전>, 예능인이 1인자가 될 수 있는 최후의 장르
유재석의 은퇴는 <무한도전>의 종영을 상상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다만 최근 예능 프로그램은 개인의 노력을 따라잡을 수 있는 영역 바깥에서 변화한다. Mnet <슈퍼스타 K>의 주인공은 생방송 MC 김성주가 아니라 유승우 같은 출연자다. 리얼리티 쇼는 전문 예능인이 아닌 각 분야의 전문가를 요구한다. tvN <SNL 코리아>처럼 매회 셀러브리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코미디 쇼도 생겼다. 유재석의 뛰어난 능력과 별개로, 그가 소화할 수 없는 영역이 생겼다. 또 다른 슈퍼맨, 강호동의 복귀는 이런 변화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강호동은 버라이어티 쇼 SBS <스타킹>과 독립편성되는 토크쇼 MBC <무릎 팍 도사>로 돌아오고, KBS의 새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과거라면 오락 프로그램의 거의 모든 영역을 책임진 셈이다. 하지만 지금 방송사는 <슈퍼스타 K>나 SBS <일요일이 좋다> ‘K팝 스타’ 같은 리얼리티 쇼에 집중한다. 꾸준한 시청률과 화제성은 <무한도전>, ‘런닝맨’ 같은 리얼버라이어티 쇼가 가져간다. 강호동이 KBS <해피선데이>의 ‘1박 2일’에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그의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그의 진짜 복귀는 하나 이상의 새 리얼버라이어티를 성공시킨 다음이 될 것이다. <무한도전>의 끝이 예능 인생의 마무리가 될 것 같다는 유재석의 말은 막연한 예감만은 아니다. <무한도전>과 같은 리얼버라이어티 쇼는 전문 예능인이 1인자로 설 수 있는 최후의 장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슈퍼맨의 역할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다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다. 예능이 변하고 있는 바로 지금이기에, 유재석과 강호동에게는 더욱 해야할 역할이 있다. 최근 예능은 점점 대형화, 프랜차이즈화되고 있다. <슈퍼스타 K>의 성공에 영향을 받은 MBC <위대한 탄생>과 ‘K팝 스타’는 막대한 자본이 투자되는 만큼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의 형식을 크게 벗어나는 모험을 하지는 않는다. <일요일이 좋다>의 ‘정글의 법칙’이 성공하자 <정글의법칙 W>가, SBS <짝> 이후에는 파일럿으로 <스타 애정촌>이 제작됐다. ‘1박 2일’은 강호동과 나영석 PD가 없어도 시즌 2가 순항중이다. <무한도전> 300회 이후 김태호 PD가 “저예산이더라도 예능국 후배들이 다양하고 독특한 프로그램을 연출할 기회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중략) 안정만 추구하는 현실이 참 안타깝다”는 트윗을 남긴 이유다. 단기적으로는 안정적인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는 선택일 수도 있다. 그러나 MBC는 지난 몇 년간 <일밤>의 코너들을 수없이 바꿨고, 새로운 시간대에는 <주병진의 토크콘서트>, <쥬얼리 하우스>, <정글러브>같은 외주 제작사의 프로그램들을 편성했다. 또한 <무한도전>같은 인기 프로그램의 방송시간은 무리하게 늘렸다. 그 결과, MBC의 대표 예능은 지금도 <무한도전>이나 <황금어장>처럼 시작한지 몇 년 째인 프로그램들이다. PD의 창작력을 보장하는 대신, 시류 위주의 졸속 기획과 편성이 낳은 결과다.
강호동, 유재석이 지금 중요한 이유
유재석과 강호동은 이런 흐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이한 존재들이다. 유재석이 없었다면 ‘런닝맨’은 1년 이상 버틸 수 없었을 것이고, 강호동이 있기에 <무릎 팍 도사>같은 새로운 콘셉트의 토크쇼가 탄생할 수 있었다. 유재석과 강호동이라면 방송사는 여전히 새로운 콘셉트의 프로그램을 용인하고, 꽤 오랫동안 저조한 시청률도 참아줄 수 있다. 새로움을 시도한 그들의 프로그램이 기다림 끝에 안정되는 순간, 두 사람의 영향력 역시 커졌다. 유재석은 <무한도전>의 성공 이후 엔터테인먼트 업계 전체의 아이콘이 됐고, 강호동은 <무릎 팍 도사>를 통해 토크쇼의 역사를 바꾸었다. 두 사람이 지금의 자리에 온 것은 당시 가장 주류의 프로그램에만 안착했기 때문이 아니라, 모험을 감수하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대중적인 성공은 그런 시도 뒤에 따른 결과물이다.
한 개인이 바꾸기엔, 예능은 이미 너무 많은 자본과 제작사의 입김이 중요해진 장르가 됐다. 이 시대에 두 사람이 과거처럼 절대적인 1인자로 남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모험을, 그리고 PD의 도전을 밀어붙일 수 있다. 그래서 강호동의 복귀가 실감나는 것은 그가 자신의 힘으로 예능에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낼 때고, 유재석이 ‘역시 유재석’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은 MBC <놀러와>가 시도 중인 새로운 콘셉트의 코너들이 결국 성공하는 순간일 것이다. 그모든 도전들이 실패한 뒤, 두 사람이 은퇴에 대해 고민해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오래오래 TV에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두 사람은 동생들의 성장을 막는 게 아니라, 그들이 놀 세상을 지키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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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강명석 기자 two@
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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