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 앞두고 대법 판결난 시범아파트 대지권 분쟁 다시 수면 위로…"육성 녹취록은 핵심 증거 채택 가능"
-주민-서울시 TF 구성해 합의점 도출 시도…"합의 안돼 법정 갈 경우 보상·착공시점 수년간 지연될 듯"
[아시아경제 김창익 기자]
시범아파트 대지권 문제를 둘러싼 주민-서울시간의 갈등이 재점화되며 용산역세권 개발사업 착공시기를 쉽사리 점칠 수 없게 됐다.
대법원 판결까지 난 상황이지만 주민들이 다시 소송을 제기할 경우 결론까지 최소 1~2년 가까이 걸릴 수 있어서다. 수천억원에 달하는 보상규모를 두고 논란이 빚어지게 되면 내년 상반기로 계획된 서부이촌동 보상 작업은 물론 2016년 완공 시점까지 줄줄이 순연될 수도 있다.
◆재부각된 논란, 어떻게 해결하나= 주민과 서울시는 현재 공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합의점을 찾겠다는 방침이지만 TF에서 이 문제가 매듭지어질 가능성은 현재로선 희박해 보인다. 실제 TF는 두 차례 협의자리를 가졌지만 아직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했다.
일단 대법원이 대지권이 서울시에 귀속된다는 판결을 한 상황에서 서울시가 최고 법원의 판결을 뒤집으면서까지 주민들에게 대지권의 전체 또는 일부를 내 줄리 만무하다.
또 박원순 시장 취임 후 인사를 통해 2008~20010년 법정 분쟁 당시 이 문제를 담당했던 서울시 관계자들이 거의 자리를 바꾼 상황에서 후임자들이 책임질 일을 할 가능성도 공무원의 조직문화를 감안할 때 제로에 가깝다. 현재 TF 소속 서울시 공무원들이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낼 수는 없는 구조란 얘기다.
법정 소송 당시 이 문제에 대한 실무 전반을 담당했던 전 서울시 임대주택국의 한 관계자는 "주민들이 새로운 증거 자료를 갖고 온다고 들었는데 이미 결론이 난 상황이고 업무가 바뀐 상황에서 (내가) 입장을 말한다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그의 후임자는 "업무를 맡게 된 지 얼마 안돼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않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렇다고 주민들이 쉽게 물러설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시범아파트의 대지 면적은 총 1만1000㎡(3350평)로 대지권의 귀속 여부에 따라 수천억원까지 보상 규모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감정평가사는 "아파트 건물 소유권이나 대지권과는 별개로 대지에 대해서는 사용권이 명백히 주민들에게 있어 대지 보상비의 일정 부분은 주민들에게 돌아간다"며 "대지권의 귀속 여부에 따라 보상금의 100%가 주민들에게 가느냐의 여부가 문제의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대지권이 없는 상황에서 2008년 시범아파트 59㎡(18평)가 7억2000만원에 팔린 적이 있다. 땅값이 사실상 매매 가격에 포함된 것으로 보상을 위한 감정평가시 주민들이 일정 비율대로 보상금을 받을 수는 있다는 얘기다.
김재철 시범아파트 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사용권에 대한 일정부분의 보상이 아니라 대지권을 100% 찾아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기준에서 보면 수척억원에 달하는 토지의 소유권을 아파트 분양 당시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았다는 게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 상황을 돌이켜 보면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1969년 이촌동 시범아파트 첫 분양(당시 중산아파트) 당시 분양 공고문엔 '대지권은 추후 따로 매수 해야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분양 시점에선 대지권이 주민들에게 귀속되지 않았다는 의미로 잔금 완납 시점 이전에 주민들이 대지권을 매입했느냐를 증명하는 게 갈등의 본질이다.
◆속타는 서울시ㆍ용산역세권개발= 문제는 잔금 납부시점과 시범아파트 2차 분양 시점인 1970년 6월 당시가 와우파트 붕괴 이후 담당 공무원들이 전원 교체돼 서류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
주민들은 2010년 대법원 판결 후 정보공개 청구 등을 통해 주민들이 대지비를 납부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들을 찾았다고 주장한다. 이 증거들은 책 한권 분량의 증거집으로 만들어져 서울시에 전달이 된 상태다. 김 위원장은 이 증거 자료를 기자에게 보여주며 ▲당시 입주증을 받으려면 대지비 완납해야 한다는 조건이 명시돼 있던 점 ▲당시 분양가가 건축비와 대지비를 합한 금액보다 컸던 점 ▲서부이촌동 대지 현황에 시범 아파트 부지가 사유지로 명기돼 있는 점 등을 들어 시범아파트의 대지권이 주민들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녹취 파일에서 전직 공무원은 이 자료를 보며 "서류상의 사인이 윤지호 당시 도시계획국장의 것이며 그가 수년전 세상을 떠났다"고 말하는 등 시범아파트 분양당시 도시계획국 담당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기도 했다.
주민-서울시간의 갈등이 해결 기미를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속이 타는 것은 서부이촌동 보상 등의 사업을 담당하는 용산역세권개발과 서울시다.
사업자 입장에선 대지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그리 중요치 않다. 서울시에 주느냐 주민에게 주느냐의 문제일 뿐 어차피 같은 액수의 보상금이 나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수년간 이어질 경우 용산역세권개발 입장에선 보상과 착공시점이 늦춰져 막대한 금융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용산역세권개발 관계자는 "하루에만 수억원이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이자로 나가기 때문에 착공시점이 1년 늦춰지면 수천억원의 금융비용이 추가로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김창익 기자 wind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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