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노승환 기자] 2009년 출범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경영난에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언감생심'이다. 12일 원주민 분 아파트 우선공급 신청이 시작된 인천 남동구 간석지구 얘기다.
접수장소인 LH 공사 별관 앞에는 원주민들이 '진을 쳤다'. 플래카드에는 '보상금 8천만원에 분양금 2억7100만원이 웬말이냐'는 문구가 적혔다. 100여 명의 원주민들은 별관 앞 인도에 줄지어 앉아 목청을 높였다.
2억7100만원은 원주민 분 아파트 전용 84㎡형(구 34.5평형)의 분양가다. 3.3㎡ 당 785만원이다. 3~4년 전만 해도 인천에서 이만한 아파트의 3.3㎡당 분양가는 으례 1000만원을 넘었다. 이에 견주면 썩 비싼 값은 아니다.
문제는 원주민들의 '부담 능력'이다. 간석지구 7만1000여㎡ 일대는 인천에서 가장 낙후됐다고 꼽혔던 동네다. 84㎡ 새 아파트 입주를 희망한 원주민들이 4년 전 받은 보상가는 평균 8천만원 선. 주민들이 분양가를 알게 된 건 올해 공급공고가 나고서다. 드러난 수치만 보면 2억원 가까운 돈을 구해야 '재정착'이 가능하다. 빚을 안 내고 재정착할 방법은 소형 임대아파트 입주 뿐이다. 이마저도 한 달에 31만~49만원 씩 임대료를 내고 살아야 한다.
12일 현장에서 만난 한 원주민은 "예전엔 작고 낡았어도 내 집이 있다는 든든함이 있었는데 별안간 세입자가 될 수 밖에 없다니 한탄스럽다"고 말했다.
공급자인 LH 공사도 속이 타긴 마찬가지다. 주거환경개선사업이란 게 애초 '손해볼 수 밖에 없는' 사업인데다 간석지구에선 손해가 더 컸다는 것이다. LH의 '손해'는 LH가 지난 3~4년 간 인천에서 추진한 다른 주거환경개선사업의 원주민 분양가에서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2008년 공급된 인천 향촌지구 84㎡ 형의 3.3㎡ 당 분양가는 680만원이었으나 2009년 나온 부개지구는 760만원, 향촌 2지구는 870만원이었다. 3년 전 값이 이미 800만원 대를 넘었다.
LH는 과거 '토공'과 '주공'의 천문학적인 적자를 고스란히 떠안고 출발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직격타를 맞은 뒤엔 극심한 현금유동성 위기까지 겹쳤다. 집값을 낮추는데 '하한선'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게 LH의 하소연이다.
LH 인천지역본부 판매팀 관계자는 "원주민 분양가는 실제 건설에 투입된 원가에도 못 미친다. 최대한 낮춘다고 낮췄는데 그 값이 나온 것이다. 주민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으면 우리도 착찹하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다"고 말했다.
원주민과 LH 공사 사이의 '실랑이'는 사실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뾰족한 '출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LH 공사는 '손해보는' 사업 하느라 허리가 휘고 원주민들은 살던 동네에 재정착하느라 허리가 휘고 있다.
노승환 기자 todif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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