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전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친 지 1년이 지났지만 사태의 주역인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푸어스(S&P)는 여전히 꿋꿋하다. 미 10년만기 국채가 1년 전보다 오히려 더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당분간 신용등급 상향조정은 없다는 입장이다.
당시 결정을 총괄한 존 챔버스 S&P 국채신용등급평가위원회 의장(56)은 6일(현지시간) 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S&P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면서 “신용등급 하향을 기점으로 향후 5년간 미국 국가부채에 대한 전망은 오히려 더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주말이었던 2011년 8월5일, S&P는 연방정부 부채한도 상향을 둘러싼 민주·공화 양당간의 정치적 교착상태와 불투명한 미국 재정적자 감축 전망을 이유로 미국 장기국채등급을 최고등급인 ‘트리플A(AAA)’에서 ‘AA+’로 한 단계 떨어뜨렸다. 앞서 의회에서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며 법안 통과에 성공했고 다른 신평사 무디스·피치는 신용등급을 유지했기에 시장의 충격은 컸다. 첫날 뉴욕증시는 7% 가까이 급락했고, 격앙된 미국 정부는 평가 적정성을 문제삼으며 S&P와 날선 설전을 벌였다.
1년 뒤인 지금 S&P의 결정은 거의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당시 2.6%에서 지난달 1.4%대까지 떨어지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세계 경제의 만성질환이 된 유로존 부채위기, 중국을 필두로 한 세계경제의 성장세 둔화 등에 미 국채는 안전자산으로 몸값이 더욱 뛰었다. 채권시장 관계자들은 거리낌없이 “우리에게 미국은 여전히 AAA등급” 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S&P의 경고가 빗나간 것은 아니다. 미국의 국가부채는 여전히 막대한 수준이고 더 늘어나고 있다. 글로벌 경제상황은 1년전보다 더 악화됐고, 의회는 ‘재정절벽(fiscal cliff, 내년부터 시작되는 1조2000억달러 규모 연방예산 자동삭감에 따른 경제 전반에 미칠 충격)’을 막기 위해 다시 지난한 합의를 이어가야 하지만 대선 정국 등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S&P의 결정은 과연 옳은 것이었나를 두고 월가 전문가들의 의견 역시 엇갈린다. 대부분은 “미국의 신용문제에 대해 너무 비관적이었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일부 소수는 더욱 암울해진 글로벌 경제를 볼 때 오히려 너무 낙관적이었다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S&P의 지적대로 미국의 국가부채 규모는 2008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40%에서 71%로 더욱 늘었다. 그러나 120%를 넘어가는 이탈리아 등에 비하면 선진국 중에서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톤대 교수 등은 “미국은 국가부채 이자비용을 충당할 능력이 충분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챔버스는 “문제는 부채의 현황이 아니라 그 향방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부채위기에 빠진 유럽국가들을 예로 들며, “지난 10년 동안 우리가 유럽 재정위기국들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렸을 때 시장은 모두 틀렸다고 했지만, 지금은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못한다”라고 강조했다.
적어도 당시 S&P가 신용강등의 이유로 댔던 이유, 즉 미 정부와 의회가 안정적이고 효과적이며 예측가능하게 경제 전반을 운영할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이던 해리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재정절벽 문제는 S&P가 옳았다는 반증”이라면서 “취약한 것은 미국 경제 자체가 아니라, 미국 경제의 ‘거버넌스(운영·관리)’다” 라고 꼬집었다.
김영식 기자 gr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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