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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개발논리에 뒷걸음질 치는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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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개발논리에 뒷걸음질 치는 서울 이규성 사회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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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삶과 정신이 유전되는 도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소통하는 도시는 꿈에 불과할까요? 곧 완공 예정인 서울시청사, 초현대식 건물이 낡은 건물을 내리 덮치는 듯한 모습은 부조화의 극치입니다. 보존과 훼손의 갈림길에서 우리의 지성, 상식이 저울질당하고, 개발연대의 무지가 다시금 재연되는 듯합니다.


이게 최근에 벌어진 일이지요.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김영삼 정부 시절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는 정치가 문화를 어떻게 억압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역사 정통성 확립이라는 정치 목적이, 그 상징 조작이 문화 말살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치스런 역사에 대한 증거 인멸이 건물 하나 없애는 것으로 가능할까요 ? 그 물음마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민주정부조차 문화 유산에 대한 이해가 이런 수준였습니다.


6.25 전쟁으로 진관사 등 수많은 문화유산이 파괴되고 상처 입었습니다. 개발연대의 참상은 더 열거하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실례로 박목월과 현진건의 생가는 소유자에 의해 철거됐으며 김수영 시인의 가옥은 폭설로 사라졌습니다. 숭례문처럼 관리 부실로 불타 버린 경우도 허다합니다.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멸실, 훼손됐습니다. 작은 나무 한그루, 돌멩이 하나에도 숨결이 묻어 있습니다. 하물며 문화유산에야 얼마나 더 많은 얼이 담겨 있겠습니까? 서울은 2000년 이상 선조들이 살아온 역사 현장입니다. 북경이나 로마에 비견될 역사문화도시입니다. 역사문화 자원에 대한 몰이해, 관심 부족, 개발 만능주의가 문화재를 흉물로 만들었습니다. 그저 죽으러 가는 코끼리의 무덤처럼 역사유산들이 파묻히고 있습니다. 유적지, 문화재, 위인들의 생가나 묘지, 산업 및 민주화의 발상지 등 역사적 사건과 발자취, 삶의 현장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금껏 서울은 거대한 공사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진절머리 나는 현장에 무지와 몰이해, 거짓된 욕심, 잘못된 법규와 제도, 관행들이 가득합니다. 문화재를 찾아 보존, 복구하는데 드는 비용은 고스란히 후손들의 몫이 됐습니다.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우리는 낡은 관념과 싸워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다시 혼돈이 시작될 수 있지요. 그 혼돈 이후 새로운 질서와 역사재부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기만 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희생을 치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지금 한류는 아시아 주류 문화를 넘어 세계 보편적인 문화 양상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문화산업이 새로운 성장동력이라고 거품 물고 떠들지만 유산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합니다. 여기가 바로 우리가 서 있는 자리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동안 파묻어온 서울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과 얘기도 함께 담아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합니다. 결코 지금 당장 과거 유물을 찾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오늘의 유산은 미래의 유산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쌓은 문화적 재부는 백년 혹은 수백년 후엔 후손들에게 수천배 더 큰 재산이 될 수 있습니다. 개발 연대처럼 역사적 가치를 묻기 전에 당장 돈이 되면 때려 부수고 없애는 일을 되풀이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 유산을 지키는 건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유산은 널려 있습니다. 표지석만 남은 경우도 있고, 그저 문헌으로만 남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들에 작은 애정을 가지는 것이 바로 유산을 가꾸는 첫걸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변의 문화유산을 다시금 돌아볼 때 서울의 역사성이 지속될 것입니다.  






이규성 사회문화부장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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