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이 일괄 구매해 농민조합원들에게 다시 파는 농자재 중 비료에 이어 농약에서도 가격을 담합한 사실이 드러났다. 농자재 가격 담합은 농민의 등을 치는 악덕 상혼임은 물론 재배 작물의 원가를 끌어올림으로써 국민에게도 피해를 주는 범죄행위다. 파렴치한 농자재 회사도 문제지만 장기간의 불공정 행위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공정거래위원회와 농협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공정위는 어제 동부하이텍, 경농, 영일케미컬 등 9개 업체가 2002부터 2009년까지 8년 간 농협과 구매계약을 할 때 납품가격을 올리려고 사전에 서로 짜고 평균가격 인상ㆍ인하율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공정위와 업계에 따르면 농약업체들의 담합 관련 매출액은 2조원에 육박한다. 담합 행위가 없었더라면 평균 가격이 농민에 유리한 방향으로 더 낮게 책정될 수 있었다는 게 공정위의 분석이다.
농약뿐만이 아니다. 앞서 1월에는 남해화학, 동부, 삼성정밀화학 등 13개 업체가 1995년부터 2010년까지 16년간 농협이 발주한 화학비료 가격을 담합한 사실이 적발됐다. 입찰 전에 물량과 투찰 가격 등을 짜고 낙찰가를 높이는 수법으로 1조6000억 원의 부당 이득을 챙겼다고 한다. 농자재 담합이 비료, 농약 등 여러 품목에 걸쳐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다는 방증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공정위의 조치는 미흡하기 짝이 없다. 농약 담합업체의 경우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216억 원을 물린 것이 고작이다. 비료 담합업체도 마찬가지다. 부당 이득이 1조6000억 원에 달하는 데 과징금은 5.2%에 지나지 않는 828억원이다. 이래서야 담합이 뿌리 뽑힐 리 없다. 악질적인 행위에 대해 징벌적 성격이 약한 과징금으로 끝내선 안 된다. 담합 업체와 관련자를 사법처리해야 마땅하다.
담합에 간여한 의혹을 받고 있는 농협을 조치 대상에서 제외한 것도 문제다. 농약과 비료 가격 담합에 가담한 영일케미컬과 남해화학은 농협의 자회사다. 농협이 불공정 행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도 공정위는 '농협에 대해선 충분한 조사를 진행하지 못했다'며 사실상 면죄부를 주었다. 농협의 농자재 계통 구매 전반을 철저하게 조사해 개입 여부를 엄정하게 가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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