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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벤더에 '우는' 영세납품업체 "어떡하나요?"

시계아이콘읽는 시간01분 12초

【수원=이영규 기자】먹이사슬처럼 돼 있는 대한민국 벤더(납품업체)업계에서 하부 영세 업체들은 '죽지 않을 만큼만' 납품단가를 보장받으면서 연명한다. 하지만 이들의 고혈을 통해 생활하는 상부 벤더들은 '손 안대고 코 푸는' 그야말로 편한 장사를 한다. 인정하기 싫지만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의 현주소다.


이를 방증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충남 아산 소재 자동차부품기업 디에이치(옛 태평양이엔지)의 고영복 대표. 고 대표는 납품을 해오던 신창전기를 상대로 부당 거래에 따른 피해를 입었다며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에 최근 소송을 제기했다. 신창전기의 요청으로 자동차부품을 납품했지만 제대로 된 단가를 인정받지 못해 도산 위기에 처해 어쩔 수 없이 소송을 제기했다는 게 고 대표의 설명이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06년 신창전기가 쌍용차 체어맨과 현대차 제너시스에 들어갈 부품 개발을 의뢰하면서 시작됐다. 고 대표는 "당시 손해가 날 것을 우려했지만 손 모 전 신창전기 대표가 '신규로 개발되는 고급 차량이므로 손해 볼 일은 없도록 해주겠다'고 말해 이를 믿고 납품을 결정했다"고 상황을 전했다.


이후 디에이치는 2년에 걸친 연구개발 끝에 부품 개발에 성공했고 납품을 시작했다. 급히 진행하느라 납품단가 협의는 하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손 대표가 손해 보지 않도록 해주겠다는 금쪽같은 말만 철썩같이 믿었다.

납품이 진행되면서 고 대표는 개발비와 원자재 가격 등을 반영한 '적정' 납품단가를 신창전기에 제출했다. 그러나 신창전기는 당초 약속과 달리 납품단가를 반토막으로 후려쳤다. 수용할 수 없는 제안에 고 대표는 현실적인 단가를 신창전기 측에 재차 요구했다. 하지만 신창전기는 묵묵부답이었다.


고 대표는 결국 낮은 단가 때문에 제품을 생산하면 할수록 적자가 쌓이자 급기야 지난 2009년 2월 관련 제조설비를 신창전기에 반납했다. 고 대표는 이때 악몽으로 부도 위기에 몰렸으며, 전 직원의 월급을 40%나 삭감했다. 직원의 3분1이 회사를 떠났다.


고 대표는 이후 신창전기에 내용증명을 보내고 직접 찾아가 읍소하는 등 피해보상을 받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신창전기는 "다른 부품 거래를 통해 손실 비용을 상계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며 상황 모면에만 급급했다. 뾰족한 해법없이 시간을 보내던 지난해 12월 신창전기 최대주주가 일본계 회사에서 한일이화로 변경됐다. 손 대표 등 경영진도 모두 물러났다. 디에이치와 논의되던 손실금 지급 논의 역시 중단됐다.


고 대표는 마지막 희망을 갖고 신창전기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신창전기는 "현재는 소송이 진행 중이므로 법무법인과 협의해 대응할 것"이라며 말을 아끼고 있다.




이영규 기자 fort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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