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이명박 대통령은 "통일은 정말 가까이 왔다"고 말했다. 통일부가 지난 16일 준비한 통일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통일항아리' 행사에서다. 통일항아리란 류우익 통일부 장관이 "통일 이후 비용부담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며 재원마련을 촉구하는 사업.
집권 후 4년 반동안 추진한 일관된 대북정책으로 북한이 통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주변상황은 바뀌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지난 4월 한 강연에서는 '농지개혁' '통중봉북(通中封北)' 같은 발언도 쏟아냈다. 북한은 과연 이 대통령의 바람대로 변했나.
북한이 최근 공개한 행보나 내부 소식통 얘기를 들어보면 변화는 감지된다. 김정일 사망 이후 권력을 물려받은 김정은은 앞선 최고지도자와 달리 '파격' 행보를 보인다. 북한 고위 간부가 모두 모인 행사에서 미국을 상징하는 미키마우스나 록키가 등장했다. 부인인듯한 여성이 김정은과 함께 현장지도에 동행했다.
대남강경파로 알려진 군부 실세를 하루 아침에 숙청하고 국가경제의 주도권을 내각으로 몰아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원칙에 입각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때문인지, 스스로 준비중인 개혁ㆍ개방의 징조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어찌 됐든 달라진 모습이다.
그러나 북한 문제의 본질인 핵문제는 여전히 답보상태다. 북한이 자위 수단으로서, 그리도 외부로부터 무엇인가를 더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서 핵무기 개발을 멈추지 않았고, 국제사회의 요청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는 걸 보면 더 나빠졌다.
일차적인 책임은 북한 내부에 있지만 이명박 정권을 비롯해 앞선 김대중ㆍ노무현 정권도 비판을 피해갈 순 없다. 대화상대로 인정하고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결국 그 결실을 핵으로 보답받았기 때문이다.
남북의 주민은 왜 분단이라는 굴레도 모자라 핵이라는 현실적인 위협까지 감내해야 하는가. 카다피의 최후를 생생히 지켜본 북한 지도부가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다. 그만큼 한반도에서의 핵위협은 더 높아졌다.
최근 국제회의에 참가한 북한 관리는 6자회담 재개 가능성을 언급했다. 북핵문제를 다룰 유일한 수단인 6자회담이 다시 열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남과 북, 그리고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까지 모두가 진전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얼마 남지 않은 이명박 정권 역시 마찬가지다. 북한이 변했다고 판단했다면 거기에 맞춰 정책의 변화를, 그렇지 않다면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다른 카드를 보여줘야 한다. 안으로만 채근하는 통일재원 마련운동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최대열 기자 dy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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