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이트 쌍벌제 시행 이래 의료기기 유통 관련 첫 적발 사례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검찰이 삼성계열 의료기기 구매대행사 등의 20억원대 불법 리베이트를 적발했다. 리베이트 쌍벌제 시행 이래 의약품이 아닌 의료기기 납품비리가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합동 의약품 리베이트 전담수사반(반장 서울중앙지검 김우현 형사2부장검사)은 15일 종합병원에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케어캠프 대표이사 이모(60)씨, E사 영업본부장 진모(41)씨 등 15명을 불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케어캠프와 E사는 6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국내 의료기기 유통시장의 70%가량을 점유하고 있는 초대형 의료기기 구매대행사다. 케어캠프의 경우 지분 52%를 보유한 삼성물산이 최대주주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 구매대행사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의 실거래가 상환제를 악용해 대형 종합병원들과 짜고 리베이트를 제공해 온 혐의를 받고 있다. 건보공단은 의료기관이 구매한 약제 및 치료재료에 대해 정부가 알린 품목별 상한가 범위 내에서 실거래가로 보험급여를 제공하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 경희의료원 등 구매대행사들로부터 리베이트를 제공받은 병원들은 실제 구매금액과 상관없이 상한가에 맞춰 건보공단에 급여를 청구한 뒤, 실거래가와의 차액 부분을 정보이용료 명목으로 되돌려 받아 챙겨온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 관계자는 “정보이용료란 발주정보, 가격정보 등 구매대행을 시키려면 당연히 병원이 제공해야할 구매조건임에도 리베이트를 감추기 위해 대가 형식으로 지불해 왔다”고 설명했다.
의약품과 달리 의료기기 시장의 경우 리베이트 쌍벌제 도입 이전까지 별다른 처벌 조항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쌍벌제가 도입된 2010년 11월부터 지난해까지 케어캠프가 제공한 리베이트 규모만 17억원, E사의 경우 2억 4700만원 규모로 드러났다.
당초 이번 사건 수사는 발전기금 운용을 둘러싼 경희의료원 내 의사간의 주먹다짐에서 비롯됐다. 내사에 착수한 보건복지부는 이중계약서가 작성되는 등 주요 병원들이 거액의 리베이트를 제공받은 정황을 포착해 검찰에 수사의뢰하며 불이 옮겨붙었다.
복지부는 창고이용료 명목으로 리베이트가 제공된 혐의도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검찰은 그러나 병원 건물 공간에 치료재료를 쌓아둔 채 구매대행사 직원들이 이를 관리하며 인근 병원으로 나르는 등 실제 창고로 활용된 점을 인정해 처벌대상으로 삼지는 않았다.
검찰은 다만 병원이 우월한 지위에 있는 이상 약자인 구매대행사의 공정한 거래기준을 마련하려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보고 이를 복지부에 통보했다. 검찰 관계자는 “의료기기 구매대행업계가 등장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고질적인 리베이트 관행이 있었고, 실제 케어캠프의 경우 쌍벌제가 도입되자 리베이트 제공이 문제되는 것인지 법무법인에 컨설팅을 의뢰하고 병원에 부당청구 자제를 건의하는 등 문제 시정을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한 점이 인정된다”고 말했다.
검찰은 케어캠프와 E사 및 두 회사 임원 등 6명을 불구속기소하고, 이들로부터 거액 리베이트를 받아 챙긴 대형 병원 9곳의 행정업무 총괄자들도 함께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각 병원 책임자들의 경우도 리베이트로 인해 개인적 이득을 얻은 점이 없는 사정 등을 고려했다.
검찰은 부당청구로 병원들이 챙긴 리베이트 금액을 전액 추징해 건보공단에 환수토록 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향후 공정하고 투명한 의약품 유통질서 확립과 국민의료비 부담 완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의료기기 구매대행 시장의 실거래가 상환제 악용 사례 외에 다른 유형의 구조적인 리베이트 관행이 있는지 계속 적발해 근절시켜 나갈 방침이다.
정준영 기자 foxf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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