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담당 판사...초반 삼성에 우호적인 입장 변화 주목
[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악연이냐 인연이냐.
삼성전자가 갤럭시탭 10.1에 이어 갤럭시 넥서스를 미국서 판매하지 못하게 되면서 이번 판결을 내린 한국계 미국인 루시 고 판사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고 판사는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 법원에서 진행되는 삼성전자와 애플간 특허전의 담당 판사다.
고 판사는 지난달 26일(현지시간) 갤럭시탭 10.1의 판매 금지를 결정한데 이어 29일에는 삼성전자의 갤럭시 넥서스에 대해 애플이 제기한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그는 갤럭시 넥서스 판매금지 결정문에서 "본안 소송 판결 전에 삼성전자가 판매금지로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가처분 결정이 내려지지 않아 애플이 당하게 될 피해가 더 크다"고 밝혔다. 이는 앞서 갤럭시탭 10.1에 대한 판매금지 판결을 내린 결정문과 비슷한 내용이다.
삼성전자는 즉각 항소의 뜻을 밝혔으나 판매 금지에 따른 손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삼성전자의 애를 태우는 고 판사는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애플에 불리한 판결이나 입장을 내놨다.
애플이 갤럭시탭 10.1의 미국 판매 금지 가처분 신청을 처음 제기하자 고 판사는 지난해 12월 "삼성전자의 제품이 애플에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줬다고 판단할 만한 근거가 없다"며 애플의 요청을 기각했다. 같은 해 애플이 독일, 네덜란드, 호주 법원에서 한 차례씩 삼성전자 제품 판매 금지 결정을 받아낸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고 판사는 판결 직전 발표한 논문에서 "아이패드가 나오기 전에 아이패드처럼 평평하고 앞면 전체가 화면으로 돼 있는 디자인이 이미 있었다"며 "애플의 디자인 특허가 무효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당시 시장에서는 애플의 안방인 미국 법원 판사가 삼성전자에 유리한 판결을 내놨다는 것과 그가 한국인 2세라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고 판사가 항소법원의 재심 명령 이후 갤럭시탭 10.1의 판매 금지 결정을 내리면서 삼성전자와 악연은 시작됐다.
고 판사는 전세계 10여개국에서 30여개 가까이 벌어지는 양사간 소송에서 핵심적인 키를 쥔 인물이다. 미국이 특허권자의 권리를 강하게 보호하고 있어 그의 판결은 다른 나라의 소송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고 판사는 또한 지난 5월 양사 최고경영자(CEO)의 회동을 명령해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종균 무선사업부장이 미국을 방문해 팀 쿡 애플 CEO와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미국 법원의 본안소송은 7월30일 시작된다.
고 판사는 1968년 미국 워싱턴DC에서 태어나 1993년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한국인 2세로 한국명은 고혜란이다. 미국 법무부 보좌관, 연방검사, 로펌 수석변호사 등으로 근무하다 2008년 산타클라라주 고등법원 판사로 임명되고 2010년부터 캘리포니아주 북부 지역 연방법원 판사로 근무하고 있다.
권해영 기자 rogue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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