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담당 기자로 신차를 시승할 기회를 종종 얻게 된다. 운전을 해보면 판매가 잘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모델이 더러 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 자동차 브랜드인 스바루가 이런 사례라고 생각된다.
이 브랜드는 지난 2010년 5월 국내 시장에 처음 상륙했다. 국내에 선보인 지 2년여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대중에게는 낯설다. 불운인 건지 출시 당시 도요타 리콜 사태 등으로 일본차에 대한 이미지마저 떨어지면서 스바루 판매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판매대수는 신통찮다. 올 들어 월평균 판매대수는 43대. 생산물량의 차이가 있겠지만 수입차 1위 브랜드인 BMW의 단일차종이 월 1000대 가까이 팔리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굴욕'이 아닐 수 없다. 그마저도 지난해보다 오히려 판매가 줄었다.
우리나라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다르다. 유럽 명차 포르쉐와 같은 수평대향형 엔진 기술을 보유하는 등 기술 경쟁력이 뛰어난 업체로 명성을 얻고 있다. 조만간 국내 출시 예정인 도요타의 스포츠카 '86'의 엔진은 도요타와 스바루가 공동개발해 탄생했는데 스바루의 수평대향박서엔진 기술이 대거 적용됐다.
판매에서도 뒤지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초·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통학용으로 스바루를 선택하는 사례가 많다. 또한 현대차보다 딜러 매장의 차량 전시기간이 짧은 유일한 브랜드이기도 하다. 그만큼 판매 속도가 빠르다는 얘기다.
해외에서 인정받는 스바루가 국내시장에서 주눅이 든 이유는 뭘까. 홍보 부족, 짧은 진출 시기 등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아마도 국내 자동차 시장의 트렌드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의 특성중 하나는 바로 쏠림현상이다. 우리나라 자동차시장은 외국인이 독특하다고 평가할 정도로 같은 모델의 차가 도로에서 많이 발견된다. 그도 그럴 것이 국산차 중에서는 현대차와 기아차가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수입차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최근 3개월 연속 월 1만대 판매라는 기록을 이어가고 있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브랜드별로 명암은 뚜렷하다. 올 들어 5월까지 판매실적을 기준으로 유럽차가 75%를 점유했다. 구체적으로는 독일차가 64% 이상을 차지하는 등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일부 업체가 시장점유율을 많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 이 말을 꺼낸 것은 아니다. 품질, 디자인 등 경쟁사보다 더 나은 부분이 있어 선택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자동차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생각보다 넓은데도 고객이 이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한국수입차협회에 따르면 국내에 진출한 수입차 브랜드는 총 24가지. 모델별 트림을 모두 합치면 국내에서 판매되는 차량 종류는 353개에 달한다. 차를 구매할 계획이 있는 고객이라면 나만의 개성을 뽐낼 수 있는 브랜드를 골라보는 건 어떨까.
최일권 기자 ig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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