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정부만 빚 부담이 가벼울 뿐 가계ㆍ기업ㆍ금융 등 3대 민간 부문은 모두 빚 부담이 무겁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재정위기에 처한 유럽 국가들과 비교하니 우리나라 정부와 민간 사이의 빚 부담 격차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엊그제 발표한 '경제전망 보고서'를 보면 우리 국민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 146%였는데 지난해 3ㆍ4분기에는 155%로 높아졌다. 포르투갈 154%, 이탈리아 80%, 그리스 98%, 스페인 141%보다 높다. 또 지난해 3분기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금융기업과 금융기업의 부채 비율은 각각 159%와 373%로 스페인 등 4개 유럽 재정위기 국가의 68~149%와 207~304%보다 높다.
'돼지'를 연상시키는 '피그스(PIIGS)'로 불리는 수모를 겪어 온 유럽의 재정위기 국가 5개 중 완전한 파탄에 이른 아일랜드를 제외한 4개 국가보다도 우리 민간 부문에 더 많은 빚이 쌓였다는 얘기다. OECD가 며칠 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전망을 하향조정하면서 가계부채 부담이 민간 소비를 억누를 가능성을 주된 이유 중 하나로 꼽은 배경이다. 기업과 금융회사들은 최근 몇 년 새 재무 상태가 좀 나아졌나 싶었는데 이번 OECD 보고서를 보니 국제 비교로는 여전히 빚이 많다.
반면 기획재정부가 수시로 자랑하듯 상대적으로 정부는 빚이 적다. 우리나라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지난해 말 현재 34%다. OECD 회원국 평균인 97%보다 훨씬 낮다. PIIGS 5개 국가의 평균인 118%에 비하면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주요 선진국도 이 비율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 일본은 210%대, 미국ㆍ프랑스는 90%대, 독일ㆍ영국은 80%대다. 우리나라는 심지어 정부가 전가한 공기업 채무까지 더한 공공기관 채무 전체의 GDP 대비 비율도 72%에 불과하다.
빚 분포를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정부만 독야청청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상대적으로 적게 했거나 그런 일 중 관련 비용과 함께 가계 등 민간 부문에 떠넘긴 게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교육비 부담이 대표적이다. 가계의 빚 부담 고통을 덜어 주는 방향에서 정부가 기여할 여지가 있다. 이는 재정건정성 악화를 선제적으로 방지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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