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금융감독원이 감독을 제대로 못해서 이렇게 된 것 아닙니까. 나는 돈을 어디서 찾아야 합니까."
금융소비자보호처(금소처) 현판식이 열린 15일, 행사를 마치고 금융감독원 1층 민원센터를 찾은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갑자기 나타난 70대의 여성 민원인에게 가로막혔다. 최근 영업정지된 한국저축은행에서 후순위채를 샀다는 민원인은 "저축은행이 후순위채 같은 위험한 상품을 파는 데 금감원이 제대로 감시를 못한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 원장은 굳은 표정으로 "불완전판매 신고센터에서 확인 후 보상을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금소처 현판식이 열린 날, 민원인의 항의를 받는 이같은 풍경은 현재 금소처가 처한 묘한 딜레마 상황을 상징하는 듯하다.
금소처는 지난해 온 나라를 뒤흔든 저축은행 사태의 결과물이다. 금감원이 건전성 감독에 치우쳐 소비자 보호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쏟아지면서 정부는 독립적으로 소비자 보호기능을 담당할 기구를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금감원이 조직 축소를 우려해 이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금소처는 독립기관이 아닌 금감원 하부 조직이 됐다. 하지만 예산권과 인사권은 모두 금감원장이 쥐고 있다. 금소처가 이도 저도 아닌 기구가 될 개연성이 있는 셈이다.
예산권도 없는 상황에서 인원도 금감원의 10분의 1 수준인 110명 밖에 안돼 금소처가 과연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겠냐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로선 법적인 지위도 모호하다. 금융소비자보호원이 설립되기 전의 과도기적인 성격이기 때문이다. 금소원 설립을 주요 내용으로 한 금융소비자보호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그때는 금소원이 역할을 대신하면서 금소처의 존재감은 희미해진다.
이날 만난 민원인을 포함해 대부분의 저축은행 피해자들은 노인들이었다. 금리를 조금 더 얹어준다는 말에 평생 모은 돈을 맡겼다 저축은행이 영업정지 되면서 돈을 날릴 위험에 처한 이들도 있다.
금소처가 금융 민원인들의 눈물을 어떻게 닦아주는지, 거대 금융사에 맞서 힘없는 개인의 억울함을 어떻게 풀어주는 지 두 눈 부릅뜨고 봐야 한다. 그것이 금소처 설립의 취지이자 정당성이기 때문이다.
이지은 기자 leez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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