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과소비 불감증, 뭐가 문제인가<上>
GDP 대비 전력 소비량 日의 3배
원가 이하 요금 산업구조 고착화
[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지난해 9월15일. 때늦은 무더위로 전국 낮 기온이 30도를 넘자 예상치 못한 냉방 수요가 폭증했다. 전력 수급은 순식간에 비상 상황으로 치달았고 한국전력은 순환 정전을 택했다. 거리의 신호등은 꺼지고, 엘리베이터에는 시민이 갇히고, 주요 공장은 멈췄다. 전 국민을 패닉으로 몰고 갔던 '9ㆍ15 대정전'이다.
주무부처인 지식경제부 장관의 옷까지 벗겼던 대정전 이후 정부는 역대 최강의 전력 수급 대책을 가동했다. 덕분에 지난 겨울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2300명의 한전 직원은 개별 기업을 1:1로 전담하는 수요 관리 고객 전담제를 시행했고 정부는 전력 예비력을 500만kW 이상으로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급한 불은 껐지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정부의 속내도 여전히 불편하다. 최대 전력이 전년 동계보다 33% 증가한 상황에서 종합적인 수급 대책이 없었다면 '블랙아웃(완전 정전)'의 아찔한 상황이 또 다시 연출될 수 있었기 때문. 업계 관계자는 "수급 비상 발생은 예방할 수 있었지만 만약 종합적인 대책이 시행되지 않았더라면 예비력은 225만kW, 예비율은 2.9%로 뚝 떨어졌을 것"이라고 했다.
더 큰 문제는 다가오는 여름철이다. 타 에너지원에 비해 전력 사용량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가스나 등유ㆍ경유 대비 전기 사용이 많은 이유는 저렴한 가격 구조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자발적인 전기 소비 절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절전 운동의 대표적 성공 사례는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 살펴볼 수 있다. 지난해 3월 대지진 발생 후 일본에서는 전년 대비 15% 절전을 목표로 국가적인 절약 운동을 펼쳤다. 결과는 21% 절전 성공이었다. 열대야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절전으로 노인들의 열사병이 속출하자, 정부가 나서 에어컨 사용을 촉구하는 방송을 내보 낼 정도로 국민이 힘을 모았다. LED 전구 판매량은 50% 급증했다.
일본의 전기 요금은 우리나라의 2배가 넘는다. 그럼에도 올해 4월1일부터 50kW 이상 고객에 대해선 17% 인상을 단행했다. 절전 운동 뿐 아니라 가격 기능을 강화해 전력 소비 절약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근래 전력 소비 증가율은 경제성장률을 넘어서고 있다. 전력 다소비 산업 구조가 고착화 돼 있다는 뜻이다. 국내 총생산(GDP) 대비 전력 소비량은 일본의 3배, 미국의 2배 수준이다.
전기 요금은 여전히 원가 이하다. 전기를 생산해 판매할수록 적자의 수렁에 빠지는 셈이다. 대표 공기업인 한전의 최근 4년간 누적 적자는 8조원에 달하고 하루 이자 비용만 60억원에 달하는 실정이다. 원가 보상률은 지난해 87.4%로 전년에 비해 오히려 떨어졌다.
전기 소비에 대한 현 세대의 불감증은 다음 세대를 어둠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전 관계자는 "국제적으로 화석연료비가 높아지면서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앞당기는 추세"라며 "선진국에선 전기 요금 이외의 추가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다음 세대를 위한 친환경 전력 설비 투자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전기 요금은 타 품목과 비교해 제한적으로 인상돼 왔다"며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서는 가격 패러다임의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정부에서도 전기 요금을 둘러싼 여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여름철을 앞두고 절전 아이디어를 모으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선 상황이다. 홍석우 지경부 장관은 최근 철강 업계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절전 아이디어를 달라"고 말했다. 다만 요금 인상에 대해서는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김혜원 기자 kimh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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