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 건전성 괜찮고...부채 분포 현황도 우려 수준 아냐"
[워싱턴=박연미기자]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 김 총재는 20일 오전(현지시간) 워싱턴의 W호텔에서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위한 DTI 규제 완화'에 대한 입장을 묻자 "DTI 규제 완화가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 중요하다는 실증 분석 결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금융자산의 규모가 금융부채의 두 배를 넘고, 이자가 붙는 금융자산이 국가적으로 100조원 가량 많다"고 답했다.
DTI는 담보를 제공하고 돈을 빌릴 때 소득에 따라 대출 규모에 제한을 두는 제도다. 집값이 오를 것이라 기대하고 무리하게 빚을 내 집 사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기 위해 만든 제도지만, 거래가 실종된 요즘엔 실수요자의 손발까지 묶었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김 총재는 이에 "가계부채는 규모보다 증가 속도를 봐야 한다"며 "부채 증가 속도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보다 높은가를 살펴야 한다"고 했다. 900조원을 웃도는 가계부채가 '잠재적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와는 구별되는 목소리다.
그는 그러면서 "지금은 이런 상황이 아닌데다 그동안 담보인정비율(LTV)을 제한해 금융기관의 건전성도 괜찮은 편"이라고 말했다. 가계 빚의 분포 현황도 크게 걱정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봤다. 김 총재는 "부채가 있는 가구 중에는 자산이 있는 집이 많다"면서 "저소득층의 경우 부채 비율이 높지만, 규모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고 했다.
인사 때마다 거듭된 잡음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김 총재는 '인사철마다 불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고 지적하자 "자꾸 뒤로 돌아가려 하면 어쩌자는 것이냐"면서 "직원들이 (한은 외부에서 온 총재를)낯설어하지만, 그렇다고 움직이지 않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는 이어 "개혁은 항상 현상을 변화시키는 것이고, 변화가 오면 불편해지는 사람들이 생긴다"면서 "(기존의 체계에서)잘된 사람, 기득권을 가진 소수들이 변화를 불편해하며 불평하는 것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김 총재는 지난 6일 임기 만료로 한은을 떠난 이주열 전 부총재를 염두에 둔 듯 "한은은 대한민국의 조직이지, 30년 근무했다고 '내 조직'이 아니다"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이 전 부총재는 한은을 떠나며 김 총재의 조직 운용 방식을 매섭게 비판했다. 특히 통화정책을 두고는 "물가안정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사실상의 고해성사를 남겨 김 총재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중앙은행 최대의 임무인 '물가관리'에 실패했다는 비판, 이른바 '기준금리 인상 실기 논란'에도 김 총재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외곬으로 물가안정만 외치는 게 좋은 것이냐"며 "물가안정도 성장률을 높이는 차원에서 가야 한다"고 했다. 김 총재는 더불어 "기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선제적으로 가려면(금리정책을 쓰려면), 6개월이나 1년 뒤를 봐야지, 지금의 경제 상황에 따라 금리정책을 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한은이 낙관론을 펴다 경기 전망에 실패했다는 지적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은은 지난해 12월 3.7%로 예상했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이달 3.5%로 낮췄다. 시장에선 당초부터 무리한 전망치를 제시한 것이라며, 김 총재의 낙관론이 괜한 혼란만 키웠다는 비판도 있었다.
김 총재는 그러나 "성장률 전망치 0.2%포인트를 낮춘 걸 두고 '굉장히 크게 낮췄다'고 표현하긴 어렵다"며 "(거시경제 전망을 전문적으로 하는)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난해 9월부터 올해 4월까지 네 번 전망치를 발표하며 세 번이나 숫자를 수정했는데, 세상이 변해도 가만히 있으면 전망을 잘했다고 보는 건지, 오히려 이러면 직무유기라고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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