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비> 3회 KBS2 월-화 밤 9시 55분
“저희 그런 게 아니라… 그런 게 아니거든요.” 서울행 막차마저 놓친 주제에, 역전 여관에서 하룻밤 자고 가라는 여관 주인의 권유를 인하(장근석)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윤희(윤아)에 대한 자신의 마음은 ‘그런 게 아니’기 때문에. 사랑과 육체적 욕망을 엄격히 분리하는 <사랑비> 속 첫사랑은 순수하다 못 해 고결하다. 인하는 윤희의 사랑을 확인하고도 감히 입술에 키스하지 못 하고 간신히 볼에 입 맞출 정도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지적한 것과 같이, 그 순결한 첫사랑은 어디서 많이 본 이야기로 도배가 되어 있다. 우정을 빗변 삼은 삼각관계, 엇갈린 타이밍의 고백, 실연의 아픔을 이기기 위한 충동적인 자원입대, 그리고 기어코 동해바다를 향해 달리는 심야열차를 타고야 마는 젊은 연인들까지. 그러나 <사랑비>가 진부하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착오라고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작품이 목표하고 있는 바가 바로 그 진부한 로맨스의 원형질을 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월을 뛰어넘는 사랑은 윤석호 감독의 오랜 테마였다. 연인들이 세상의 방해로 헤어지지만, 긴 세월 지나도록 사랑은 쇠락하지 않아 결국 재회한다는 플롯은 ‘4계절 연작’의 중심 내용이었다. 미완으로 끝난 첫사랑을 30년 후 다시 이어간다는 내용의 <사랑비>는 그 믿음의 절정이다. 그래서 <사랑비>가 그리는 첫사랑은 30년이란 세월을 견딜 만큼 신화적이어야 하고, 모두에게 익숙한 첫사랑의 원형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두 사람이 마음을 확인하고 보는 영화가 멜로물의 고전 <러브스토리>인 것도, 작품이 여느 시대극 못지않게 공들여 70년대의 공기를 재현하는 것도 모두 인하와 윤희의 사랑에 원형질의 지위를 부여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러므로 <사랑비>를 두고 왜 이렇게 진부하냐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애초에 그 진부한 사랑의 순수함과 강인함에 대한 믿음을 설파하기 위해 만들어진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윤석호 감독의 세계관에 설득되느냐, 안 보느냐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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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이승한(자유기고가) 외부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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