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정운찬 전 총리가 29일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직을 내놓았다. 정 전 총리는 기자회견을 통해 "더이상 자리를 지키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정부와 대기업은 동반성장에 대한 의지가 없다고 싸잡아 비판했다. 정 전총리의 이같은 사퇴를 두고 정치권에선 본격적인 정치행보가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새누리당은 정 전총리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박근혜 선대위원장에 대적할만한 대권후보가 없는 새누리당에서는 친이(친이명박)계쪽에서 정 전 총리를 대항마로 삼을 수 있다는 기대다. 정 전 총리는 이미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정치참여의사를 밝혔고 이 대통령도 "충분히 검토하고 행동하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총선이 끝나면 정몽준 전 대표, 이재오 의원,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과 함께 비박(비박근혜)진영의 대권주자로 부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정운찬카드'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다.
새누리당 한 쇄신파 의원은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총선의 결과와 관계없이 박근혜카드 외에는 대안이 없다"면서 "정 전 총리가 흥행몰이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필승카드도, 차선책도 아니다"고 평가절하했다.
정 전 총리는 '세종시총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했다가 박근혜 위원장이 원안고수 입장을 밝히고 수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면서 총리직을 내놨다. 정 전 총리는 충남 공주 출신이지만 세종시 수정안 추진 이후 충청권에서 그에 대한 반감은 여전하다.
정 전 총리에 대한 재계의 시선도 곱지 않다. 정 전 총리는 임기 8개월을 남기고 가진 전날 사퇴 기자회견에서 "재벌만을 위한 대명사인 전경련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면서 전경련 발전적 해체론까지 주장했다.
재계 관계자는 "재벌과 전경련해체 등을 주장하는 통합진보당의 급진좌파적 주장과 다를게 없다"면서 "경제학과 교수, 총장, 총리를 지낸 분이 양극화의 책임을 정부, 대기업에 떠넘기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정 전 총리가 야권의 러브콜을 받을 가능성도 크지 않다. 야권은 이미 총선과 대선을 단일화후보로 치르기로 정했다. 대선후보도 넘쳐나고 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정치참여 의사를 밝히며 대선후보로 다시 주목받고 있고 문재인 상임고문의 지지율도 탄탄하다. 리얼미터의 대선 다자구도 지지율 조사에서 박근혜34.6%), 문재인(20.4%), 안철수(15.5%), 김문수(3.8%), 손학규(3.6%), 유시민 정동영(각각 3.0%), 정몽준(2.9%) 의 순이다. 정 전 총리는 2.4%에 불과하다.
야권 관계자는 "총선과 대선을 MB정권심판론으로 몰고가는 상황에서 야권에서 이 대통령과 세종시 수정안을 밀어붙였던 전직 총리를 영입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정 전 총리는 "경제 민주화가 사회가 나아갈 길이고, 사회 곳곳에 동반성장의 가치가 전파돼야 한다"면서 "우리 사회가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는 데 필요하다면 그것이 무슨 역할이고 어떤 방식이든 제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정치에 참여는 하겠지만 자신이 직접 찾거나 뛰어들지는 않겠다는 의미다. 정치권이 정 전 총리의 메시지에 어떤 답을 보낼 지 궁금하다.
이경호 기자 gung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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