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경제대국인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지난 15일 마침내 공식 발효됐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 최대 경제권인 유럽연합(EU),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과 FTA를 발효한 유일한 아시아 국가이며 우리 경제 영토는 60%를 넘어서게 됐다.
필자가 20년 넘게 몸담고 있는 섬유업계는 이 같은 소식을 반기고 있다. 미국으로 수출하는 제품에 특히 높은 관세를 물어온 섬유업계는 이번 FTA의 수혜 업종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섬유제품은 뛰어난 품질에도 불구하고 중국ㆍ동남아산과 미국 시장에서 치열한 가격경쟁을 벌여왔다.
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은 미국 주변국과는 가격 및 접근성에서 크게 뒤처졌다. 이번 한ㆍ미 FTA 발효로 일본, 캐나다, 중국, 멕시코 등의 섬유 제품에 비해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됐고 국내 생산증대로 인한 고용창출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섬유산업의 호황을 기대하는 이면에는 관세 혜택을 누려보기도 전에 발등에 떨어진 불씨를 끄느라 허덕이는 중소기업이 있다. 지금까지 FTA를 체결한 어떤 국가에 비해서도 미국의 원산지 검증이 엄격하기 때문에 미처 준비를 끝내지 못한 중소기업들의 원산지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섬유제품은 원료에서 제품 생산까지 방적, 제직, 염색, 재단, 봉제의 다양한 과정을 거친다. 한ㆍ미 FTA에서는 이 모든 작업이 국내서 이뤄져야 원산지 제품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다른 업종에 비해 원산지 증명을 받는 것이 까다로운 편이다. 즉 각 공정별로 역내 가공 증빙을 서류로 갖춰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섬유기업의 90%는 중소기업이고 각 공정별 협력업체들이 영세하기 때문에 시스템 구축이나 관련 서류의 작성ㆍ보관이 수월하지 않다.
한ㆍ미 FTA 환경하에서는 원산지 부정 발급이 적발될 경우 그동안 감면받은 세금을 추징당하는 것은 물론 과태료와 가산세까지 부가된다. 원산지 검증에 대한 우리 중소기업의 걱정은 클 수밖에 없다.
극세사 클리너를 수출하는 필자의 회사도 2, 3차 협력사 80여개사와 거래하고 있는데 다품종 소량이다 보니 서류 구비나 전산시스템 구축에 벌써부터 막막해하는 업체가 태반이다. 원산지 증명 시스템 구축과 FTA 영향분석까지 완료한 대기업과 다르게 중소기업은 정보와 전문인력 부족으로 관세혜택을 받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한ㆍ미 FTA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몇 년 전부터 영세기업이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원산지 관련 컨설팅을 준비하고 여러 가지 지원책을 강구하는 등 미국의 강력한 제재에 대비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중소기업 실태나 내부의 역량을 파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과거 한국 경제를 일으킨 주역이었지만 어느 새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국내 섬유업계에 한ㆍ미 FTA는 다시 한번 섬유 르네상스를 꿈꿀 수 있는 기회다.
정부는 영세기업이 정부 지원제도를 십분 활용할 수 있도록 홍보나 역할을 더욱 키워야 할 것이다. 원산지 증명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고 미국과 한국의 품목분류기준을 통일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또 해외시장 진출에 나서는 중소기업들이 신규 시장에 대한 정보나 수출처 발굴 등 초기 장벽을 넘어설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안과 지속적인 정보 제공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이영규 웰크론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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