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지난달 9일 발생한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 정전 사고의 조직적 은폐를 주도한 문병위 전 고리 제1발전소장이 15일 결국 보직 해임됐다. 한국수력원자력이 문 전 소장을 본사 중책인 위기관리실장으로 임명한지 13일 만이다.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이 "엄중 문책하겠다"고 밝힌지 불과 하루 뒤다.
문 전 소장이 책임을 진 결정적 이유는 직간접적인 은폐 지시다. 당시 현장에 있던 간부 및 직원들에게 "상부에 보고하지 않겠다"고 했던 발언은 사실상 '덮어 두고 넘기자'는 은폐를 의미한 것으로 해석된다. 사고가 발생한 저녁 8시34분 즈음 발전소 인근에서 식사 중이었던 문 전 소장은 상황이 이미 벌어진 뒤에서야 현장을 보게 됐다고 진술했다. 아연실색한 100여명 직원들 사이에서 "상황이 종료됐는데 외부에 알리지 않는게 어떻겠냐"는 말이 나왔고, 문책이 두려웠기에 함께 '나쁜 마음'(?)을 갖게 된 것으로 유추된다.
하지만 짚고 넘어갈 문제는 또 있다. 이번 고리 원전 1호기의 정전은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차제에 '지위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장 소장 하나를 갈아치운다고 이런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구멍 난 보고 체계, 상하복명식 조직 문화 등으로 연결되는 한수원 내부의 구조적인 결함을 수술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비난의 화살은 일단 김종신 한수원 사장에게로 맞춰져 있다. 정작 김 사장도 고리 원전 일부 직원의 은폐 시도에 따른 피해자인 셈이지만 계통상 지휘책임은 결국은 김 사장이 질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김 사장은 지난 14일 "심한 자괴감을 느끼고 있고, 만약 총체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다만 일각에선 이달 27~28일 국가적 행사인 핵안보정상회의가 예정돼 있는 데다 김 사장이 부대 행사격인 원자력인더스트리서밋(23~24일)의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어 현 시점에서 그의 퇴진이 능사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옷을 벗는 것은 쉽지만 진정으로 책임지는 자세는 그런 게 아니지 않느냐"(정부부처 국장)는 시각이다.
1972년 2월 한국전력공사에 입사해 고리 원전 건설 협장에도 몸을 담았던 김 사장은 지난 40년을 원자력 분야에서 한 우물을 판 전문가로 통한다. 업계 관계자는 "현장에 직원이 100여명이 있었지만 한달이 지나도록 조직적으로 은폐가 가능했던 것은 그 만큼 모두가 원전 안전은 물론 조직에 대한 심리적인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라며 "원전 운영 주체인 한수원을 비롯해 관련 기관의 쇄신이 분명히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김혜원 기자 kimh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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