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도 모르는 관가 이야기] 전세 산다는 박재완 장관
[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쉬는 날 무려 8~9시간을 댓글 다는 데 쓴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그만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덕분에 취임 초 50여명 남짓이던 페이스북 친구가 10개월 새 4985명으로 100배나 늘었다. 다른 부처 장관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수준이다.
7일 오후 이뤄진 페이스북 정책 대담은 그래서 기획 단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새로운 소통 도구를 잘 활용하는, 겸손하지만 소신 굽히는 법이 없는 박 장관이 어떤 얘기를 들려줄까 기대가 컸다.
페이스북 친구들도 그랬나보다. 사전 접수에서만 144개의 질문을 남겼고, 대담 중 70여개의 질문이 더 올라왔다. 동시 접속자는 최대 360여명, 진행자의 이력도 흥미로웠다. 대담 진행은 '편지' '마법의 성'으로 유명한 가수 겸 스타 펀드매니저 김광진 씨가 맡았다.
여러 흥행코드가 버무려진 이벤트였지만, 현장 분위기는 예상과 달랐다. 딱딱한 수트를 차려입은 두 양반은 어색하게 마주앉아 빈출 문제를 내고 모범 답안을 말했다.
진행자는 복지와 물가, 유가와 등록금, 실업률에 대해 물었고, 박 장관은 답했다. 복지 포퓰리즘은 안되고, 높은 대학진학률이 청년 실업의 주 원인이며, 고환율 정책은 쓴 적 없고, 서민들이 고물가에 고생이지만 국제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를 넘어서지 않는다면 유류세 인하는 검토 안 한다고. 좀 부풀리면, 국민들이 백 번쯤은 들었던 얘기들이다.
현장을 찾은 취재진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어 이게 아닌데. 재방송 보려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게 아닌데.'
1시간의 대담은 그렇게 재미도 감동도 없이 끝났다. 형식은 새로웠지만, 정작 중요한 알맹이가 케케묵은 옛 것 그대로였다. 정책 실패에 대한 솔직한 고백, 이해를 구하는 용기, 잘 해보자는 추임새, 계급장 떼고 말하는 진솔함. 이런 걸 기대했던 시청자들이 불만을 터뜨렸지만, 두 사람 중 어느 쪽도 언급하지 않았다. '갓 쓰고 자전거 타는 박재완'. 이날 이벤트는 후하게 점수를 줘도 딱 이 수준이었다.
고개를 갸웃한 순간도 있었다. "고환율 정책 썼다는 건 정말 오해"라거나 "나도 전세 사는데 집주인이 나가라고 하거나 전세금 올려달라 할까 걱정"이라던 답변은 귀가 있어 들렸지만, 가슴에 와 닿질 않았다. 박 장관은 판교의 고급 주택가에서 전세를 산다.
이날 대담의 절반은 심한 잡음이 섞이고, 소리가 안 들려 도대체 무슨 얘길 하고 있는지 전해지지 않았다. 방송 장비는 열악한데 수화 방송까지 욕심을 내 아예 스트리밍이 멈추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지엽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보다 안타까운 건 소통하자고 벌인 이벤트에서 오히려 불통의 현실만 확인된 것 아닌가 하는 점이다. 실시간으로 박 장관의 대담을 본 아이디 '시청자'는 이런 댓글을 남겼다. "장관님은 소통을 많이 하신다고 이런 것도 하시고, 현장도 가시고 그러시는데요. 마치 자주 만나 내 말에 고개는 끄덕이면서도 절대 자기 고집을 꺾지 않는 그런 친구 같은 느낌이 있네요… 마음을 열고 정말 소통해주세요."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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