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약혼녀 선영(김민희)이 감쪽같이 증발해 버리자 남겨진 문호(이선균)는 황망하기만 하다. 그녀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지만 흔적을 쫓을수록 문호가 마주하는 선영의 모습은 자신의 기억과 어긋나기만 한다. 사촌 동생 문호의 부탁으로 선영을 추적하기 시작하는 종근(조성하)에게도 그녀의 흔적은 희미하다. 그러나 사랑했던 선영의 진실을 밝혀내려는 강박에 시달리는 문호와 전직 형사로서 비밀을 파헤치고 싶은 충동을 느낀 종근은 지워진 발자국을 따라가듯 숨겨져 있었던 선영의 실체를 하나씩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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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믿지 마세요. 미워도 마세요
“인생 조지고 싶어?” 선영의 행방에 집착하는 문호에게 종근은 포기할 것을 권하며 그렇게 말한다. 누구도 그런 결과를 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손 쓸 겨를도 없이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는 것이 세상일이다. 그리고 영화 <화차>는 운수 나쁘게도 인생을 ‘조져버린’ 사람들의 고군분투를 따라간다. 갑자기 약혼녀를 잃어버린 이유를 알지 못해 괴로운 문호나 뇌물수수로 직업을 잃고 터닝 포인트를 잡지 못해 어려운 종근에게 선영은 일단 도달해야 할 부표와 같은 것이다. 달리 따라갈 것이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사실 선영이야말로 타의에 의해 얼마나 인생이 망가질 수 있는가를 가장 절실히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녀가 살아남기 위해 허우적거릴수록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모습을 통해 영화는 세상의 바닥이 늪이라고 말한다. 겉으로 들여다봐서는 그 속을 알 수도 없고, 대강 손을 넣어서는 짐작도 할 수 없는 공포와 슬픔이 이 세계의 발치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스릴러보다 드라마에 방점을 찍는다. 선영에게 혐의의 올무를 씌웠다가 벗기고 다시 덮어씌우고 풀어주며 판단을 유보하는 과정은 혼선을 유도하기보다는 감정 이입을 위한 장치다. 그래서 추적하는 쪽에서 확보한 진술과 선영의 과거가 번갈아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선명하게 미궁을 설명하고 속도감 있게 사건을 진행시키는 중반부는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혼란스럽지도 지루하지도 않다는 점에서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러나 나비 모티프를 사용하는 방식이나 선영이 맞이하는 결말을 보여주는 장면은 다소 노골적이며 도심과 변두리의 구분이 모호한 화면들은 세련되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야기는 펄펄 끓도록 뜨겁지만 스크린은 온도만큼의 아찔함을 구현하지 못한다. 특히 고난이도 직소퍼즐을 맞춰나가다 마지막 한 조각을 제자리에 놓는 순간의 카타르시스를 정확하게 겨냥한 미야베 미유키의 원작을 읽은 관객들이라면 스타일에 대한 아쉬움이 더욱 남겠다. 욕망이라는 이름은 분명하나 불타오를 화력은 충분치 못한 열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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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윤희성 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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