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 회사원 김 모씨(31)는 최근 동호회 모임에서 망신을 당할 뻔한 일이 있었다. 호프집에서 회원들과 정기 모임을 갖고 각자 회비를 내는 순서가 돌아와 지갑을 열어본 순간, 현금이 불과 몇 천원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아차, 오는 길에 은행에 들린다는 걸 깜빡했구나'라는 생각에 당황했지만 이내 김 씨는 스마트폰을 꺼내며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스마트폰에 있는 전자지갑 서비스를 이용해 총무에게 회비를 송금한 것이다. 계좌번호도 필요 없이 전화번호만 알면 즉석에서 입금이 완료됐다. 김 씨는 이젠 현금이 없어도 전자지갑 서비스 덕분에 어디서나 당황하지 않게 됐다.
지갑을 가지고 다닐 필요 없이 스마트폰으로 결제하는 '전자지갑 시대'가 열리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올해 국내 모바일 결제 시장의 총 수수료 규모는 19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최근에는 은행권에서도 모바일 뱅킹을 대체할 신개념 '전자지갑'을 선보이며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는 ‘스마트폰 속의 지갑’이라는 새로운 컨셉과 ‘선불 충전 화폐’라는 금융서비스를 접목시킨 것으로 기존 공인인증서와 보안카드는 물론, 계좌번호를 알 필요도 없이 전화번호만 알면 송금 및 결제가 가능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은 최근 스마트폰을 이용한 '전자지갑 서비스'를 경쟁적으로 선보였다.
신한은행이 KT와 함께 선보인 전자지갑 서비스 'ZooMoney(주머니)'는 선불충전형 전자지갑으로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사이버 머니를 충전한 후 송금, 출금, 지급결제 등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모바일 지불결제 서비스이다.
이 서비스는 본인 휴대폰번호와 연결된 ‘주머니’ 가상계좌번호를 이용해 휴대폰 번호로 송금이 가능하다. 신한은행 또는 KT 고객이 아니더라도 본인 명의의 휴대폰만 있으면 간단한 본인 인증 절차를 거쳐 은행 방문 없이 누구나(만 14세 이상) 온라인 상에서 간편하게 가입할 수 있다.
특히 상대방의 휴대폰번호만 알면 공인인증서와 보안카드 없이 타인에게 충전잔액 선물하기가 가능해 더치페이, 경조사비 전송 등에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충전잔액으로 KT 통신요금도 납부할 수 있다.(1일 50만원 내에서 충전 가능)
또 ‘주머니’는 가맹점 정보가 담긴 NFC Tag를 이용해 결제단말기 없이 결제가 가능하며 ‘주머니’가 인식할 수 있는 QR코드를 영수증에 삽입하여 간편하게 결제 할 수 있다.
하나은행의 '하나 N 월렛(Wallet)' 어플리케이션은 선불로 충전한 가상의 전자화폐를 기반으로 한다. 선불 충전된 금액은 P2P(개인과 개인간 온라인상 거래) 송금, 물품결제 및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이용 등 다양한 서비스 이용에 활용된다.
상대방의 전화번호만 알고 있으면 충전금액을 간편히 송금할 수 있으며, 하나은행 ATM기에서 현금으로 인출도 가능하다.
특히 파리크라상, 던킨도넛츠 등 20여개 브랜드의 인기 상품을 구매해 오프라인 매장에서 교환할 수 있는 모바일 결제 기능도 가능하다.
이에 앞서 기업은행은 지난해 4월 전자지불결제 어플리케이션 '모바일머니'서비스를 선보인 바 있다.
이처럼 각 은행들이 앞다퉈 스마트폰을 이용한 전자지갑 시장에 뛰어들고 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미래 신성장 사업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걸림돌로 작용하는 문제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전자지갑 서비스가 애플사와의 의견 차이로 아이폰에서는 불가능 ▲악용 가능성에 대한 국내 규제 문제 ▲각자 경쟁 체제로 인한 시장 통합의 어려움 등을 꼽았다.
현재 전자지갑 서비스는 안드로이드폰에서만 가능한데 이는 자사 결제 서비스를 이용하기 원하는 통신사들과 애플사의 견제에 의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만 14세 이상부터는 누구나 간편하게 가입해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 폭력 문제로 인한 '돈 상납'으로 악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아울러 가맹점 확대 등의 문제도 각자 경쟁하다보니 충돌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은행권 공동으로 논의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스마트폰의 활성화로 인해 전자지갑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 하다"면서도 "다만 선결돼야 할 과제들이 남아 있어 정착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강욱 기자 jomarok@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