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어장> ‘라디오 스타’ MBC 수 밤 11시 5분
무명시절 남이 남긴 짜장면을 몰래 먹던 추억을 들려주던 박철민이 눈시울을 붉혔다. 숙연해 지는 분위기, 박철민이 “그 때 안 먹었어야 되는데”라고 말을 잇자 MC들의 머리 위로 폭탄 CG가 터진다. 안석환, 박철민, 한상진을 묶어 ‘명품 배우’라 명명한 이 날의 ‘라디오 스타’(이하 ‘라스’)는, <황금어장> 개편 후 가장 완성형에 가까운 ‘라스’였다. ‘무릎팍 도사’가 담당하던 감동 코드까지 떠안게 된 ‘라스’에는 웃음은 스튜디오 토크, 감동과 눈물은 ‘고품격 노래방’으로 배치하는 식의 느슨한 구분이 있었다. 하지만 이 날은 달랐다. 오랜 무명 시절을 거친 게스트들의 사연은 전진배치 됐고, 스튜디오와 ‘고품격 노래방’은 코너 간의 구분 없이 모두 웃음과 감동이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하나의 흐름을 유지했다. 눈물 뒤에 바로 웃음을 접붙여 쇼 전체의 맥을 살리는 ‘라스’ 고유의 문법으로 70분을 지탱한 것이다.
물론 그 문법은 간지러운 순간을 좀처럼 못 견디는 ‘라스’ 특유의 정서에 기인한 것이다. 하지만 ‘라스’가 눈물을 웃음으로 받아내는 비결이 꼭 그 뿐만은 아니다. 이 지극히 현실적인 쇼는 게스트의 사연에 개런티나 보유자산과 같은 구체적인 살을 붙이는 현실적인 접근으로 공감을 이룬다. 단역 시절 ‘주인공들이 음식을 여러 개 시켜서 먹는 게 제일 부러웠다’는 한상진의 고백에, 윤종신은 “’어디 놔 드릴까요’라고 물어보면 꼭 ‘가운데 놔 주세요’”라고 살을 붙인다. 구체적이기에 보편성을 지니고, 공감할 수 있기에 쓰라린 과거도 키득대며 말할 수 있다. 다른 토크쇼였다면 안석환이 평양에 백신공장을 짓는 운동을 했던 경험을 그저 미담으로만 소비했겠지만, ‘라스’는 ‘김일성 대학’이란 다섯 글자에 웅성대는 MC들을 부각시키며 웃음을 덧붙이고 현실을 환기시키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 밉지 않은 속물성 덕분에 안석환은 천원으로 하루를 버티던 배고픈 과거와 ‘예쁜’ 발차기를 하던 거친 과거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었다. 가장 마이너한 감성의 쇼는 그렇게 메이저 토크쇼로의 재탄생을 완성했다. 타협하지 않는 ‘라스’ 만의 방식으로.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이승한(자유기고가) 외부필자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