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채지용 기자]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가 높았지만 결국 물가가 발목을 잡았다.
유럽 재정위기, 글로벌 경기둔화 가능성 등 대외 불확실성이 높은 가운데 세계 각국은 유동성 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경기둔화가 실물경제에 점차 영향을 미치고 있는 한국도 이에 동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미국 연준(Fed)을 비롯한 유럽중앙은행(ECB), 영란은행, 일본은행, 스위스중앙은행, 캐나다중앙은행 등 세계 주요 6개국 중앙은행은 달러 유동성 공급 확대를 위해 달러 스와프 금리를 0.5%포인트 인하키로 했다. 또 중국은 3년만에 대형 은행에 대한 지급준비율을 0.5%포인트 내리기로 하고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은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등 각국은 최근 글로벌 경기둔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통화정책을 완화하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수출, 경상수지 등을 보면 한국경제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비교적 양호하다고는 하지만 언제까지나 글로벌 경기둔화 흐름을 빗겨갈 수는 없는 상황이다. 해외 투자은행(IB)들은 내년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1월보다 0.9%포인트 하향조정한 3.6%로 내다봤다. 글로벌 경기둔화로 수출 모멘텀이 약화되고 민간소비와 설비투자 증가율도 빠른 속도로 둔화하는 등 향후 경기전망이 밝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 성장하는데 그쳤다. 전분기에 이어 두 분기 연속 3%대에 머물렀다. 특히 내수부문 성장속도가 둔화되고 있는 점이 우려되고 있다.
이승준 하이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유럽 재정리스크 해소를 위한 주요국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 공조 등 정책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유럽 재정리스크의 본질적인 문제는 해소되지 않아 대외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며 "또한 내수경기가 예상 밖으로 크게 위축되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치솟는 물가는 금리인하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꼼수' 논란이 불거진 개편된 물가지수 산정방식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2%를 기록하면서 석달만에 다시 4%대로 올라섰다. 금값 등을 반영한 기존지수로는 4.6%까지 치솟았다. 전기요금, 철도, 고속도로 통행료 등 향후 공공요금 인상이 줄줄이 예고돼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물가가 쉽사리 꺾이기는 힘들 것이란 전망이다. 아울러 9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문제도 금리인하에 큰 걸림돌이다.
한편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실기'에 대한 논란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금리정상화를 보다 빠르게 진전시켰더라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 보다 유연한 통화정책을 펼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는 지적이다. 최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한은이 통화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물가안정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채지용 기자 jiyongc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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