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공순 기자]미국 연방준비은행이 지난 22일 발표한 ‘은행 스트레스 테스트’의 내용은 자못 흥미롭다. 미국의 일부 언론에서 'Black Sky Scenario'(캄캄한 하늘)이라고 명명한 이번 테스트는 지난 2008년의 금융위기 때보다도 더 극심한 조건을 설정하고 있다.
가장 최악으로 상정된 조건(worst case scenario)은 미국의 실질 국내총생산(real GDP)이 올해 4/4분기에 -4.84%, 2012년 1/4분기는 자그마치 -7.98%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8년의 금융위기 당시 미국의 GDP 감소율이 5.5%에 머물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연준의 설정은 이번 위기가 2008년을 훨씬 능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다소 후행적인 실업률은 2012년 1/4분기에 10.58%로 10%대를 돌파하고 2013년 2/4분기가 가장 나빠 13.05%까지 치솟은 뒤 2013년 3/4분기부터 조금씩 회복하는 것을 시나리오로 하고 있다.
미국의 은행들은 이 조건을 견딜 수 있을만큼 자본충당계획을 세우고, 비상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를 두고 대부분의 언론과 분석가들은 연준이 유로화의 붕괴를 대비하여 시나리오를 설정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연준의 비상 계획은 또 유럽연합 국가들보다도 미국의 경기 침체가 더 악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시나리오가 설정하고 있는 유럽연합 전체의 GDP 증감률은 올해 4/4 분기 -1.03%, 미국이 8%가까이 하락하는 2012년 1/4분기에도 고작 -3.49%에 머무른다.
다만 회복도 훨씬 늦어 2012년 3/4분기에 -6.91%로 최악을 경험한 뒤 2012년 4/4 분기에 -4.92%, 2013년 2/4 분기에 +0.35%로 설정되어 있다.
이에 반해 미국의 경기 회복은 훨씬 빨라서 2012년 4/4 분기에 0% 성장, 그리고 2013년 1/4분기부터는 성장이 본격화되어 2013년 전체로는 약 2.3% 정도의 성장률을 가정하고 있다.
유로화가 붕괴하면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것은 당연히 유로존 17개 국가이며,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유럽연합 27개국이다.
그런데 유럽에 대한 위험 노출이 2천억 달러(지난 10월 연준 발표)에 불과하다는 미국이 훨씬 더 빨리, 더 깊게 충격을 받는다고 설정한 것은 여러 가지 의문을 자아내는 대목이다.
물론 유로화가 붕괴하면 엄청난 신용 공황이 뒤따르고 국제 교역이 급속하게 감소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더 큰 타격을 받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같은 혼란의 와중에도 미국 국채 가격은 오히려 상승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으니, 미국에 국채 위기가 온다고 보고 있지 않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경제'가 말하지 않은 다른 요인들을 추가한다면 보다 설명이 쉬울 수 있다.
한 예로 연준이 설정하고 있는 조건과 비슷한 정도의 급격한 성장률 하락과 빠른 회복은 2001년의 9.11 사건 직후와 2002년의 이라크전 직후 벌어진 현상과 대단히 유사하다.
연준의 다우존스 산업지수 시나리오도 충격적이다.
올해 4/4분기는 다우 9,504, 2012년 1/4 분기는 7,576, 2/4분기 7,089까지 떨어진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2012년 3/4분기는 5,705, 4/4분기가 바닥으로 5,668을 가정한다.
정확하게 지난 주말의 다우지수의 절반이다.
2013년부터 약간씩 반등해서 같은 해 말에는 7,600선까지 설정하고 있다.
어떤 이유로든 연준의 '최악'이 현실화된다면, 세계는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지평으로 접어들 것이다.
이공순 기자 cpe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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