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친왕, 日·유럽 떠돌며 쓴 기록 첫 공개
[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일본의 교육은 모방 교육이다. 제도와 방법 모두 서양교육과 닮아있다. 국민의 성장에 적합한 것이 아니라 서양 것을 그대로 흉내 낸 것이다.'
한말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이은)이 일본과 유럽 등을 돌며 남긴 기록이다. 이 기록엔 '힘들어도 국내에서 농업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등과 같은 내용도 담겨 있다.
이런 기록을 담은 영친왕의 수첩이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22일부터 내년 1월31일까지 열리는 '하정웅 기증전-순종 황제의 서북 순행과 영친왕, 영친왕비의 일생'에서다.
21일 문화재청(청장 김찬) 등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재일교포 하정웅(72)씨가 2008년 주일본 한국대사관에 기증한 영친왕비(이방자)의 사진 등 유품 610건을 국립고궁박물관이 인수하면서 열리게 됐다.
일본 오사카에서 이주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하씨가 영친왕비와 인연을 맺은 건 1974년 봄의 일이다. 하씨는 서울 창덕궁 낙선재에서 미술품 바자회를 준비하던 영친왕비를 우연히 만났고, 그 뒤 오랫동안 친분을 다져왔다.
그 도타운 인연의 끈이 하씨와 영친왕비를 이어준 것일까. 영친왕비가 세상을 떠난지 19년이 되던 2008년. 첫 만남이 그랬던 것처럼 하씨는 우연히 영친왕비의 유품을 만나게 됐다.
곰팡이 냄새가 날 정도로 오래된 포장지에 쌓여 있던 유품엔 영친왕비가 1919년에 쓴 일기와 영친왕의 수첩, 영친왕 부부의 사진 등이 들어있었다. 영친왕과의 결혼을 앞둔 설렘을 적은 영친왕비의 일기와 이들 부부의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를 모두 담은 사진 100여점까지. 하씨는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평소 '미술품은 개인 소유물이 아닌 인류가 공유해야 할 교과서 같은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던 하씨는 주저 없이 이들 유품 기증을 결정했다. 영친왕 부부의 유품은 그렇게 주일본 한국대사관으로, 이내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씨와 영친왕비와의 아련한 인연을 담고서 말이다.
'하정웅 기증전-순종 황제의 서북 순행과 영친왕, 영친왕비의 일생'에선 영친왕의 수첩과 영친왕비의 일기 외에 순종화제의 서북 순행 사진첩과 영친왕비가 낙선재에서 사용했던 가구, 영친왕비가 직접 만든 자수병풍 등도 만나볼 수 있다. 이들 모두가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되는 것이다.
성정은 기자 j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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