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원의 여의도프리즘]# 영등포 민주당사에 가면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사진이 곳곳에 걸려있다. 당의 자랑스러운 역사이자 얼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인이 된 두 분에겐 수많은 업적에도 불구, 당연히 역사적 과오도 있다.
우선 DJ. 그는 대통령 직선제라는 1987년 6월 항쟁의 핏빛 전리품을 신군부 세력인 민정당 노태우 후보의 당선으로 귀결시킨 상당한 책임이 있다.
TK의 노태우, PK의 김영삼, 충청의 김종필 후보와 함께 자신이 동시 출마하면 호남과 수도권의 진보표를 흡수 당선될 수 있다는 이른바 ‘4자필승론’. 그 논리에 따라 정통 단일야당인 통일민주당을 탈당, 평화민주당을 급조한 ‘적전분열’의 결과였다.
또 한 명의 ‘민주진영’ 분열의 당사자인 김영삼은 얼마 후 노태우 김종필 등과 3당 통합을 감행, 대표적 야당도시였던 부산을 지금까지 보수의 아성이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DJ와 민주당이 이후 수십 년 간 ‘전국정당’ 이라는 비원을 향해 몸부림쳐야만 했던 역사적 뿌리가 바로 평민당 창당이었던 것이다.
# 노무현 전 대통령과 추종자들은 민주세력의 염원인 전국정당화를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이라는 매우 어설프고 급진적 방식으로 이루려 했다.
친노세력 일부는 민주당을 분당시키고 그 결과 민주당 사수파가 정치권에 어떤 식으로든 남아있기를 바라기까지 했다.
지역당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민주당의 존재가 부산·경남 및 수도권에서 열린우리당 승리를 담보해 줄 것이라는 정치공학 적 계산이었을 것이다.
이 같은 모험주의는 수많은 민주당 지지자들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모욕을 주는 결과로 나타났다. 그들이 바로 DJ와 YS의 분열로 상처받고 허약해진 민주개혁진영의 깃발을 그나마 떠받쳐 온 주역이었는데 말이다.
잔류 민주당은 이후 각종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연전연패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고 결국 참여정부 붕괴와 이명박 신자유주의 광풍으로 연결되고 말았다.
그 와중에 호남의 구정치인 상당수도 민주당 이름으로 정치적 생명을 연명할 수 있었다.
결국 노무현의 열린우리당 창당은 게도 잃고 구럭도 잃었던 급진 모험주의의 전략적 완패라 할 수 있다.
# 평민당 창당으로 분열됐던 호남과 PK의 개혁진영 통합작업이 또 한 번 시도되고 있다. 야당가에선 남부 민주벨트의 복원작업이라고도 불린다. 이번엔 진보적 시민운동 그룹까지 가세했다. 6월항쟁의 주역이던 재야 일부가 진화한 바로 그 세력이다.
애당초 뜻이 다른 민주노동당 등은 그렇다 치자. 통합 논의를 주고받는 민주당과 ‘혁신과통합’ 등은 이 역사적 과제 앞에 옷깃을 여며야 한다.
특히 제1야당 사람들은 ‘50년종가’, ‘민주당 중심’ 같은 얘기는 좀 자제하는 게 옳다. 민주당은 25년 쯤 거슬러 올라가면 분열의 주요 당사자이기도 했다. 당의 진짜 주인인 지지자들이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정말 모른단 말인가.
한마디로 87년 6월 항쟁 때의 통일민주당 시절처럼 더 큰 집을 짓자는 것이다. 당시 70%의 국민들이 압도적 지지를 보냈었다.
그 같은 정당을 복원하려면 장기적으론 현재의 민주당 세력이 통합야당에서 때로는 비주류가 될 수 있을 정도의 세력재편이 돼야만 한다. 그래야 끈질긴 호남당 시비에서 벗어나 전국정당으로 도약할 수 있다.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사반세기 지속돼 온 ‘87년체제’, 그 시스템의 내구연한이 끝나가는 징후가 안철수·박원순 바람 같은 다양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 야권통합이 DJ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외부세력을 영입하던 차원과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접근돼야 하는 이유다.
한편 ‘혁신과통합’ 등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우리 사회 민주화와 진보개혁을 위해 헌신한 부분을 존중하는 자세로 통합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놓곤 김대중 노무현 집권 10년 간 정치 잘 되기만 바라던 사람들이다. 그러고도 툭하면 ‘지역주의자’로 주조 돼 온 분들 아닌가.
통합의 지혜는 그들의 간절한 염원을 헤아리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열린우리당 창당 때의 오만함과 조급증, 어리석음을 반복하면 이번엔 정말 역사의 죄인이 된다.
광남일보 국장 dw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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