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노력하겠습니다
[아시아경제 박은희 기자]"누구를 위한 5%인하안 이겠어요. 여력이 있어서 등록금을 더 내리고 싶은 대학은 눈치 보여서 못 그럴테고, 진짜 사정 안좋아서 5% 내릴 형편이 안 되는 대학도 어쨌든 따르긴 해야겠죠. "
지난 7일 숙명여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임시총회에 참석했던 지방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이같은 말을 던졌다. '등록금 5% 인하'는 대교협에서 강조하는 대학의 특수성에 반하는 일종의 '담합행위가 아니냐'는 자조인 셈이다.
전국 202개 4년제 대학 모임인 대교협은 이날 임시총회 뒤 기자회견을 열어 '내년 3월부터 평균 등록금 5% 인하'를 뼈대로 하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김영길 대교협 회장(한동대 총장)은 "모든 대학이 일률적으로 5%를 낮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다음 달 각 학교별로 등록금 심의위원회를 열어 인하폭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평균' 등록금 인하율을 5%로 사실상 고정했다는 점이다. 이는 재정이 열악한 대학들에게는 실현하기 어려운 목표이면서 동시에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대학에게는 일종의 방어벽이 되는 셈이다.
한 지방 사립대 관계자는 "대교협에서는 각 대학별로 인하폭을 결정하도록 하겠다고 말하지만, 우리 학교가 인하폭을 키우면 다른 학교로 부담이 갈 것이 뻔하기 때문에 이를 어기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여유가 없는 대학들은 구조조정을 통한 재정확보 방법밖에는 없을 것"이라며 "이는 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대학들이 등록금을 5%보다 더 내려도 좋고, 정 안되면 덜 내린대도 어쩔 수 없지만 마치 담합처럼 이런 식으로 선을 그어버리면 여러가지 발전적인 가능성이 함몰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또 "각자 여력에 맞게, 다만 진정성을 가지고 최선의 조치를 취한 뒤 교육 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일단 5%라는 기준이 마련됐기 때문에 운영자금에 여유가 있는 대학들도 적립금을 포기하며 더 큰 폭의 인하를 하려고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로 이날 임시총회의 결정에 대해 설명했다. 대학등록금이 선택이 불가능한 공공재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대학이 내라는 고지서대로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납부할 수 밖에 없는 학생들과 그 부모들의 처지를 대학이 제대로 고민하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도 흘러나왔다.
대학등록금의 인하 폭을 협의하기 위해 대학의 총장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가이드라인을 정한 것 만으로도 일반 기업의 일이라면 당장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여부를 조사해야 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한편,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이주호)의 대학구조조정 추진과 감사원의 대학 등록금 감사결과 발표 이후, 일부 대학이 운영자금을 빼돌리고, 예산ㆍ지출을 조작하는 등 비리를 저지른 것이 드러나면서 대학들은 '10% 가량 등록금을 낮출 수 있는 여력이 있음에도 적립금 확보를 위해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박은희 기자 lomor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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