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건 제약회사가 아니라 일자리다
[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보건복지부가 논란 속 '반값약' 제도를 31일 확정해 발표한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제약산업이 튼실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 정부는 말한다. 제약회사들은 산업의 몰락을 우려한다.
양쪽 다 일리가 있는지라 누구 말이 맞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해 보이는 게 몇 가지 있는데, 본의 아니게 제도의 덕을 보는 쪽이 있다는 사실이다.
내년 3월 시행될 반값약 제도는 주로 복제약의 가격을 깎는 게 핵심이다. 모든 복제약은 지금의 53% 수준으로 가격이 통일된다. 현재는 출시 순서대로 값을 매기는 소위 계단식 구조다.
복제약을 빨리 시장에 내놓는 회사들은 주로 상위 제약사다. 그래서 같은 약이라도 상위사 제품이 하위사 것보다 비싸다. 복제약 가격을 통일하면 상위 제약사들이 더 큰 타격을 받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상위사들은 리베이트를 주기 어렵다. 하지만 원래부터 싼 약을 팔던 하위사에게는 리베이트 여력이 남아 있게 된다. 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해 글로벌 제약사를 만들자는 애초 취지와는 달리, 새 제도는 복제약 전문 제약사를 육성하는 해괴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예측 가능한 또 하나의 시나리오는 정부가 제약산업을 과소평가한 데서 나온다. 정부는 반값약 제도가 기업의 인수합병(M&A) 등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 말한다. 과연 그렇게 될까.
제약산업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의미 있는 M&A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안다. 동일한 사업구조는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며, "망하더라도 내 회사는 못 판다"는 분위기도 바뀔 가능성이 없다. 그들은 이렇게 110년간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해왔고,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제약회사의 '끈질긴 생명력'은 사업의 특성 때문이다. 영세업체부터 대기업까지 '똑같은 사업구조'를 가지고 경쟁하는 특이한 구조다. 제약회사는 글로벌 대기업이 될 수도, 마음만 먹으면 직원 10명으로도 꾸릴 수 있는 '고무줄 사업'이다.
제약회사는 10만명에 달하는 두터운 '인간 방패'로 모든 충격을 흡수할 것이다. 때문에 반값약이 아니라 반의 반값약을 만들어도 제약사 간판은 내려오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사라지는 건 제약회사가 아니라 일자리다
건보재정을 절감하는 데 제약사 때려잡기만큼 쉽고 즉각적인 방법이 없다. 하지만 그 결과도 가볍게 볼 일인가는 다른 문제다.
복지부 공무원 몇 명의 손에 가족까지 포함한 수십만명의 생계가 달렸다. 31일 발표까지 남은 며칠이라도 새 제도가 썩은 살뿐 아니라 성한 살까지 파내는 우를 범하지 않을지 면밀히 짚어보길 바란다. 애초부터 건보재정과 일자리를 맞바꾸려 했던 건 아니지 않은가.
신범수 기자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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