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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칼럼]이 대통령은 '학동공원'을 아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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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칼럼]이 대통령은 '학동공원'을 아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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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의 '논현동'은 묘한 곳이다. 한때 부자동네라 불렸지만 지금은 그런 것만도 아니다. 강남 하면 떠오르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도 없다. 번듯한 빌딩과 비싼 식당, 유명 성형외과가 즐비한가 하면 강남에서 보기 어려운 재래시장이 건재한 곳이기도 하다.


논현동의 진면목은 대로변을 벗어나 골목길로 들어섰을 때 드러난다. 영동개발 붐 속에서 세워진 덩치 큰 단독주택이나 연예인이 입주했다 해서 유명세를 탄 고급 빌라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게 단독주택을 헐어내고 지은 3ㆍ4층짜리 서민형 빌라다. 그 뒤쪽에는 반지하 방이 드러난 낡은 연립, 월세집, 원룸이 있다. 강남 부자촌이라기보다 첨단과 과거, 업무와 주거, 1%와 99%가 공존하는 '특별시 서울'의 압축판이라 할 수 있다.

업무시설이 밀집한 논현2동보다 옛 주택과 시장이 잔존한 강남대로 옆 논현1동 쪽이 특히 그렇다. 투표 성향을 봐도 논현1동은 뭔가 다르다.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에서 논현1동의 후보 지지율은 오세훈(한나라당) 50.5%, 한명숙(민주당) 42.9%였다. 논현동과 맞붙은 신사동은 68% 대 27%, 압구정동은 77% 대 18%였다. 강남구 전체 지지율(60% 대 34%)과 비교해도 논현1동은 '덜 강남스럽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다.


학동공원은 논현1동의 중심에 자리한 아담한 공원이다. 논현동의 이름이 '산골 논밭길'서 유래됐다는 말을 증명하듯 학동공원은 예전 용요봉(龍搖峰)이라는 작은 봉우리였던 곳이다. 강북 남산에서부터 강남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있지만 공원을 찾는 사람은 대부분 동네 주민이다.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고, 정담도 나누는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다. 배드민턴 코트가 있어 때로는 함성이 공원을 흔든다.

학동공원에서 걸어서 3~4분 거리의 코너에 붉은 기와를 얹은 평수 큰 2층 단독주택이 서 있다. 요즘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며 유명해진 이명박 대통령의 '논현동 사저'다. 주변을 둘러보면 문외한이라도 경호하기 쉬운 입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곡동 사저' 논란을 놓고 청와대는 안전(경호)과 비용의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일까. 안전과 경호만이 퇴임한 대통령의 돌아갈 집을 정하는 절대적 잣대일까. 문제의 시발은 바로 그런 발상이며, 그것을 핑계로 경호실에 모든 책임을 둘러씌우는 청와대의 사고다.


임기를 마친 대통령에게서 국민은 어떤 모습을 기대할까. 나들이를 끝낸 듯 담담하게 예전 집으로 돌아와 평범한 이웃, 동네의 어른, 존경받는 원로로 주민과 애환을 나누며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그것은 경호나 안전만으로 대치할 수 없는 가치다.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대통령이 지켜야 할 자존이다. 서민적인 이 대통령도 그런 생각이리라 믿고 싶다.


내곡동 부지는 잡다한 의혹을 제쳐 놓고도 원초적 문제가 있었다. 위치도를 보면 주민들과 격리된 외진 곳에 터를 잡고 있다. 게다가 그린벨트를 끼고 있어 다른 주택이 옆에 들어설 가능성도 없다. 경호에는 최적지일지 모른다. 그러나 오직 경호뿐인가. 국민 손으로 서울시장에 대통령까지 뽑아 주었는데 왜 외진 곳에서 담을 높이 쌓고 살아야 하는가.


사저 문제가 논현동 본가로 귀착된 것은 다행이다. 빈부가 동거하는 골목, 지척의 공원에서 이웃을 만나고 시끌벅적한 영동시장에도 들려 보통 시민의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곳, 논현동은 그런 곳이다.


2013년 새봄 이웃의 박수 속에 옛 집으로 돌아오는 전직 대통령을 보고 싶다. 학동공원에서 주민들과 어울려 활짝 웃는 '보통시민 이명박'을 보고 싶다. 사저를 둘러싼 더 이상의 평지풍파를 사양하고. 털어놓자면 나도 논현1동 주민이다.






박명훈 주필 pm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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